"어떡하지? 이야기할 거야?"
"분위기는 말해줘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이야기를 해. 야근 더 하라고?"
"야근 안 하고 일 끝내는 게 베스트 아닌가?"
"야근할 수 있게 일을 더 시키라는 것 같은데…"
아침부터 파트 리더들의 단체 채팅방이 조용히 들끓었다.
비슷한 연차, 비슷한 나이대의 우리는 회사에서 난감한 일이 생길 때마다 이곳에 모여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속내를 나눴다.
일종의 디지털 대나무숲이랄까.
최근 흉흉하던 소문이 현실로 다가왔다.
야근 시간이 부족한 부서는 일이 없다고 판단해 인력을 재배치한다느니,
신입 배치를 하지 않는다느니….
어제는 그룹장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우리 팀 야근 시간이 타 팀에 비해 적다며 파트 리더들을 불러 모았다.
말이 하소연이지, 사실상 압박임을 우리는 알았다.
근태 시스템에서 월별 야근 시간을 뽑아봤다.
결과는 확연했다.
팀의 막내 3인방은 정확히 8시간만 근무했고, 과장급들은 야근이 넘쳐났다.
평균은 얼추 맞지만 편차가 심했다.
막내들의 근태 기록은 약간의 놀라움이었다.
업무에서 한 번도 공백을 낸 적이 없어서,
회사에 오래 남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버타임이 단 1분도 없었다니.
그들은 주어진 8시간을 완벽하게 압축해서 사용하고, 남은 시간은 자신의 인생을 사는 데 쓰고 있었던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일 것이다.
업무 효율이 뛰어나거나, 혹은 업무량이 적거나.
어느 쪽이든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들에게 ‘야근을 좀 하라’는, 세상에서 가장 모순적인 말을 건네야 할 입장이 되었다.
그들의 퇴근 후 일상을 안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취미를 즐기며, 워라벨을 지켜가고 있다.
업무 공백도 없는데 야근을 강요하는 게 과연 옳을까?
"난 이야기 못하겠다."
"그룹장 성격에 다음 달에 또 체크할 것 같은데…"
야근을 더 하라는 말은 도저히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대신,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인 사실로 공유해야겠다는, 일종의 타협점을 찾았다.
내키지 않는 말을 전해야 하는 순간만큼 초라한 기분도 없다.
그래도 팀원들을 모아 차분히 설명했다.
회의실은 숨 막히게 조용했다.
팀원들의 무표정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그것이 긍정인지 불만인지, 이해인지 체념인지 도무지 읽을 길이 없었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짧은 공지가 끝났다.
회의실 뒷정리를 하고 나가는데,
앞서가던 팀원이 뒤늦게 들어온 동료에게 회의 내용을 요약해 주는 소리가 들렸다.
"3줄 요약하자면…
회사가 야근 체크한다.
파트장은 차마 야근하라고 말 못 하겠다.
알아서 야근해라."
빙빙 돌려 말한 내 의도가 이토록 정확하고 명쾌하게 전달되었음에 안도해야 할까,
아니면 나의 표현력이 이토록 1차원적이었음에 부끄러워해야 할까.
씁쓸한 마음과 함께 얼굴이 화끈거렸다.
'집중력 있는 스마트한 업무로 워라밸을 챙기라'는 임원들의 다정한 말 뒤편에서는,
야근이 적은 부서를 색출하는 서슬 퍼런 칼날이 번뜩이고 있다.
이 기이하고 모순적인 풍경 속에서,
우리는 오늘도 각자의 방식으로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