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이렇게 살지 않나요?
"가면을 좀 벗어봐.
그럼 훨씬 나을 텐데."
아내가 말했다.
요즘 들어 회사 일이 유난히 버겁다고 하던 날이었다.
아내는 한참을 조용히 듣더니 그 말을 남겼다.
'가면이라니...'
그 단어가 이상하게 오래 머물렀다.
얼마 전, 나는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 애들 공부엔 신경 안 쓴다고 했잖아.
잘하면 좋고, 못해도 괜찮다고.
공부가 다는 아니라고.
그런데 요즘 회사 일도, 어머니 사고도 겹치니까
마음에 여유가 없더라.
첫째 성적이 떨어지고,
둘째가 숙제를 또 안 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괜히 속에서 화가 나는 거야.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던 내가,
고작 점수 하나에 기분이 오르내리는 걸 보니
가식적인 내 모습에 실망했다고 해야 하나…
기분이 썩 좋지 않더라."
그때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멋진 아빠라는 가면 말고,
그냥 당신으로 살아봐.
그게 훨씬 자연스러울 거야."
"…"
"나 봐.
그냥 대놓고 의대가 최고라고 이야기하잖아.
부담 준다고? 솔직한 마음은 의대 아냐?"
아내는 얼마 전부터 자신을 옥죄던 가면을 벗었다고 했다.
학생에게도, 동료 교사들에게도
친절하려 애쓰던 예전의 자신 대신
이제는 싫은 건 싫다고,
잘못된 건 바로잡자고 말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훨씬 마음이 편해졌단다.
나는 피식 웃었다.
스무 해가 넘도록 가면을 쓰고 회사에 다닌 사람에게
그 말은 쉽지 않았다.
회사에서 나는 내가 아닐 때가 많다.
상사는 나를 가장 편하게 생각한다.
그의 하소연을 듣는 자리에서
나는 늘 고개를 끄덕이고, 적당히 웃고
그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준다.
하지만 속으로는 늘 생각한다.
'왜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지?'
'나는 편하지 않은데.'
그의 말 한마디에 감정을 숨기고, 표정을 다듬고
속으로 수십 번의 계산을 한다.
그렇게 얻은 건
'믿음직한 부하직원'이라는 평판.
그게 내 가면이다.
오랜 시간 함께 일한 박 프로는 까칠한 동료였다.
싫은 건 싫다,
못하는 건 못한다고 분명히 말하던 사람.
내 입장에서 그의 태도는 늘 위태로워 보였고,
이 조직에서 오래 버티기 힘들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지금은 중요한 프로젝트를 도맡고,
동료들은 그의 결정이라면 믿고 따른다.
무엇보다 그와의 적절한 선을 지키는 노력들을 한다.
그의 서툴러 보였던 솔직함이
결국은 가장 단단한 무기였다.
가면을 벗은 그는 남았고,
가면을 쓴 나는 점점 지쳐간다.
사람들이 보는 나는 진짜 내가 아니다.
그들은 내가 만들어낸 '역할'을 보고 있을 뿐이다.
스무 해 동안 쌓아 올린 가면은
이제 너무 무거워서 벗으려 해도 쉽지 않다.
아내의 말처럼,
그 동료처럼,
가면을 벗으면 정말 더 나아질까.
속내를 숨기고, 조직에 맞추는 게
성숙한 태도라고 믿었는데
요즘은 그 믿음이 점점 흔들린다.
모나게 보이던 사람들의 방식이
결국은 오래 버틸 수 있는 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출근길마다
습관처럼 얼굴을 만져본다.
무표정한 내 얼굴이 낯설지 않으면,
그날은 그냥 그렇게 지나간다.
가면을 벗을 용기가 생기면,
그건 그날따라
마음이 조금 덜 무거웠다는 뜻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