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끝까지 다정한 사람일 수 있을까

by 곱게자란아빠

학창 시절, 성악설과 성선설을 배웠을 때는
그게 왜 중요한지 잘 몰랐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선하냐, 악하냐를 두고
그렇게까지 논할 일인가 싶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는 법 아닌가.

그래도 굳이 고르라면, 성선설 쪽에 마음이 갔다.
막 태어난 아이가 본래부터 악할 리는 없다고 믿었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조금씩 변하는 거겠지.
상황이, 환경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마음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거라고.



오래 몸담은 회사는 하나의 작은 세상이다.
수천 명의 직원들이 한 제품을 완성하기 위해 달리고,
그 중심에는 ‘리더’가 있다.

그들은 분 단위로 미팅을 하고, 보고를 받고, 결정을 내린다.
실무자가 놓친 디테일을 귀신같이 짚어내는 걸 보면
‘저런 역량이 있으니 그 자리에 올랐겠구나’ 싶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자리에 오른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못됐다.’

화를 잘 내고, 시키는 데 주저함이 없고,
때로는 애써 만든 걸 단숨에 뒤집기도 한다.

‘저렇게 독해야 올라가는 거구나’ 싶다가도,
휴일도 없이 사람들을 몰아붙이는 걸 보면
‘자리가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 걸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올해 초, 그 자리가 바뀌었다.
전임자는 디테일에 매우 강했다.
빠른 판단과 추진력으로 조직을 움직였고,
그 속도에 맞추기 위해 다들 쫓기듯 일했다.
그는 휴가 중에도, 출장길에서도 사람들을 쉬게 두지 않았다.
결국 자신까지도 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새로 온 리더는 다르다는 소문이 돌았다.
젠틀하다는 평, 화를 내지 않는다는 이야기.
오랜만에 상사에 대한 ‘기대’라는 걸 해봤다.

팀원 중 누군가가 불쑥 물었다.
“점잖으시다는 그분도 그 자리에 가면 변하겠죠?”
모두들 너무 큰 기대의 후유증을 알기에
애써 모른 척을 했다.

그 후 몇 달이 지났다.
회의실의 공기는 확실히 달라졌다.
고성은 줄고, 의견이 오갔다.

하지만 젠틀한 그의 표정에서도
가끔 예전 리더의 그림자가 스치듯 지나갈 때가 있다.
순간적으로 꿈틀대는 감정을 눌러 담는 그의 얼굴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 싸움을 본다.
그는 자신 안의 선함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는지도 모른다.

문득, 잊고 있던 성선설과 성악설의 논쟁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쓸데없는 이야기라 여겼던 어른들의 철학적인 논쟁은
사실 ‘사람이 변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선하게 태어나지만,
그가 선 자리는 그 본성을 끊임없이 시험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부드럽던 목소리가 거칠어지고,
어떤 사람은 그럼에도 끝까지 다정함을 지켜내려 한다.

나는 지금의 리더가 후자이길 바란다.
조직의 안녕을 넘어,
한 사람의 본성이 끝까지 선하게 남기를.

그리고 그 바람은 나에게도 해당된다.
모니터 한쪽에 붙은 포스트잇의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

그 문장을 읽을 때마다
잠시 숨을 고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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