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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감정의 기록들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by 곱게자란아빠

회사 서랍을 정리하다가, 잊고 있던 다이어리를 꺼냈다.
업무 기록들 사이사이, 그때의 내 마음이 고스란히 묻은 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은 녹록지 않은 회사 생활에 대한 불만,
동료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푸념 같은 것들이었다.

한 장, 두 장 넘기다 보니
업무 흔적들 속에서 감정의 잔상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심지어 장문의 편지도 있었다.

불만과 답답함을 어딘가에 쏟아내고 싶어,
다이어리를 대나무숲처럼 삼아
있는 말, 없는 말을 휘갈겨 적어둔 흔적이었다.


'너… 그렇게 살지 마. 책임감도 없고, 진짜 회사 생활을 이렇게 하면 안 되지…'


작년 다이어리였는데,
놀랍게도 그 대상이 누구였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 나는 누구에게 그렇게 화가 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주변을 둘러봐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반년도 지나지 않아 사라질 일이었는데,
그땐 왜 그렇게 분노에 부들부들했을까.
그게 회사라는 공간의 묘한 점이다.
그 순간엔 인생이 걸린 문제처럼 보이던 일도
몇 달만 지나면 ‘그때 좀 힘들었지’로 정리된다.


피식 웃음이 났다.
지난 일,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다이어리 한 귀퉁이에 적힌 문장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출처는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엔 꽤 위로가 되었던 말이었는지 급하게 적어둔 흔적이었다.


“제가 버티면 상황이 더 나아질까요?”
“아니, 상황이 더 나아지진 않아.
다만 네가 더 나은 사람이 될 거야.”


회사는 종종 사람을 키우는 곳이 아니라,
사람의 한계를 시험하는 곳 같다.
그래서 버틴다는 건, 어쩌면
'더 단단해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물론, 단단해진다고 해서 인생이 쉬워지는 건 아니다.
다만 예전보다 덜 흔들리고,
덜 상처받는 내가 생긴다.


그게 회사 생활이 우리에게 남기는 최소한의 선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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