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상식의 경계선

by 곱게자란아빠

인사팀 담당자들과의 정기 미팅.

오늘의 화두는 ‘근무 시간 기강 확립’이었다.


휴게실 안마의자에 장시간 누워 있는 사람,

사무실을 트랙 삼아 걷기 운동하는 사람,

심지어 화장실에서 취침하는 사람까지.


에이, 설마 싶었는데.

그 ‘설마’가 내 주변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인사팀은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들이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에게 악영향을 준다며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회의가 끝나고 주위를 둘러보니,

방금 내 자리 앞을 지나갔던 사람이

다시 지나가고 있었다.

파워워킹 자세로.

꽤 놀라운 광경이었다.


자리에 앉아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몰래 주식 거래를 하는 사람은 봤어도,

‘사무실 마라토너’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파트 단톡방에 간단히 공유했다.


“근무 시간엔 업무에 집중해 주세요.

인사팀에서 이런 사례들을 모니터링 중이라고 합니다.

혹시 주변에 이상한 행동으로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경우가 있으면 알려주세요.”


그랬더니 바로 답이 왔다.


“ㅇㅇ부서 ㅇㅇㅇ 부장은 근무 중에 손톱을 깎아요.

소리도 크고 너무 거슬려요.

사무실에서 손톱 깎는 게 정상인가요?”


순간, 아… 그 소리.

나도 들어봤다.

‘도대체 어느 개념 없는 사람이 손톱을 깎나’ 했던 기억이 났다.

그게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니.


한 명이 입을 여니,

그동안 꾹 눌러뒀던 이야기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탕비실 냉장고에 제 이름까지 써 붙인 간식 봉투가 자꾸 사라져요."

"저도 그런 적 있어요."

"범인을 꼭 잡아야 해요."


“새벽 2시에 업무 메신저 보내는 해외 담당자들 너무한 거 아닌가요?”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회사 메신저엔 시차가 표시되는데,

유럽의 한낮이 한국의 새벽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쑥 메신저를 보내는 사람들.


나도 몇 번이나 새벽 진동에 놀라 깬 적이 있다.

정말 급한 일이 아니라면,

그건 서로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 아닌가.


“그렇죠… 상식적이진 않네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옆자리 동료가 작게 중얼거렸다.


“탕비실 수세미 있잖아요.

그걸로 자기 안경 닦는 사람이 있어요.”


“진짜요?”

“네. 뽀득뽀득해서 좋은가 봐요. 근데 그게 괜찮아요? 나만 찝찝한가요?”


“아니요, 그건 너무…”

말끝을 흐렸다.

상상만 해도 소름이었다.


요즘 부쩍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얘기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가 생각하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는 걸까.

물론 세상 모든 일에 정답은 없다.

누군가에게는 컵 수세미로 안경을 닦는 게,

나름의 정답일 수도 있겠지.


우리는 그걸 ‘상식의 범주’라고 불렀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암묵적인 테두리.


요즘 들어 그 테두리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이 나이 들어감에 따라 생기는 ‘꼰대력’과,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해와 포용력’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인지,

아니면 정말 상식 밖의 사람들이 많아진 건지.


잘 모르겠다.

다만 오늘도 파워워킹 중인 그 직원이

내 자리 앞을 또 지나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지난 감정의 기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