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가 없다는 말

좋은 취미생활 찾기 중

by 곱게자란아빠

요즘 중2 아들이 부쩍 말이 줄었다.
별것 아닌 일에도 쉽게 발끈한다.
엄마와 다투는 일도 잦다.
아내도 만만한 성격이 아니라
둘이 부딪히기 시작하면 금세 목소리가 커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괜히 나섰다가 불똥이 튈까 봐 조심한다.
중재하려다 되레 편들기로 오해받기 일쑤라,
이젠 그냥 조용히 방문을 닫는다.
옆집까지 우리 집의 소란이 새어나가지 않길 바라며.

지난 주말,
오랜만에 외식을 하기로 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는데 아들만 보이지 않았다.

"야, 엘베 왔다!"
"기다려, 양말 한 짝이 없어!"

다들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데
혼자 방 안을 뒤적이며 투덜댔다.
결국 엘리베이터를 보내버렸다.

"너 뭐 하냐, 안 나오고?"
"양말이 없어!"
"미리 준비를 했어야지, 다들 기다리잖아."
"미리 했어."

'미리 했는데, 왜 양말이 없냐'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삼켰다.
사춘기 아들과의 대화에서 논리는 가장 무용한 도구다.

욱하고 치미는 마음을 누르며,
나는 외식 대신 ‘대화’라는 훨씬 어려운 메뉴를 선택했다.

"요즘 왜 그래?
방금 일도 그렇고,
왜 그렇게 자주 화를 내는 거야?"

"나 화 안 냈어."

"그건 화낸 거야.
아빠가 10분 전부터 준비하라 했는데
늦게 나오고,
널 기다린 사람들에게 네가 보인 태도도 불량했어."

목소리는 최대한 낮췄다.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게,
조곤조곤 말하려 했다.

"요즘 힘들어?"


그 한마디가 트리거였는지,
아들이 갑자기 눈물을 글썽였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아들이 말했다.
"나 요즘 너무 스트레스 받아..."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나 싶었다.

"왜,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니..."

또 단답이 이어질 줄 알았지만
잠시 후, 작게 이어진 목소리가 들렸다.

"학교도 재미없고. 그냥 다 스트레스야."

"친구들이랑 안 맞아?"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재미있는 게 없어.
예전엔 그림도 그리고,
야구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 하면 기분이 좋아졌거든.
근데 요즘은 아무것도 재미가 없어."

"음...
예전에 재미있던 일들이 시들해진 거야?
아니면 그런 걸 할 시간이 없어서 그래?"

"모르겠어. 그냥 재미가 없어졌어."

그 말이 오래 맴돌았다.
'재미가 없어졌어.'


아들의 텅 빈 눈에서,

나는 10여 년 전 금요일 밤의 나를 보았다.



삼십 대의 막바지였을 거다.
퇴근길, 동료들과 한잔 하며 나도 똑같은 말을 했다.

"요즘 인생이 너무 재미없어."


"야, 나도 그래. 마셔!"


"회사, 집, 일, 육아... 인생이 왜 이래?"

술잔을 건네던 동료가 물었다.
"너 취미 없냐?"

"취미? 글쎄.... 별로."

"골프나 낚시, 아니면 나처럼 조기축구라도 해봐.
뭐든 하나 있으면 좀 낫다."

입사 지원서에 '취미: 독서'라고 적던
그 형식적인 대답 말고,
정말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가
내게 있었던가?

그게 문제였다.
십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난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걸 찾지 못했다.

그런데 그 '부재'를
아들의 입을 통해 다시 듣게 되었다.

그때의 나를 닮은 아들.
닮을 게 없어서 이런 걸 닮았나 싶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빠로서의 책임감이 불쑥 솟았다.

그날 저녁,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이 요즘 재미가 없대."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운동하면서 땀 흘리는 게 좋지 않을까?
테니스 어때?
수영 다시 시켜볼까?
아니면 캠핑 같은 것도 괜찮겠다."

평소 내 취미엔 눈길도 안 주던 사람이
아들 얘기엔 아이디어가 끝이 없다.
괜히 웃음이 났다.

그래, 하나씩 해보자.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걸 찾아주는 일.

그리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도 이참에 내 취미를 좀 찾아봐야겠다."

그날 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재미를 잃는다는 건,

살아가는 마음의 탄력을 잃는 일'이라고.

아들은 지금 그걸 배우는 중이고,
나는 그걸 되찾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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