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물장어의 꿈

해철형님을 생각해 본다

by 곱게자란아빠

요즘 유튜브 알고리즘이 해철 형님을 자주 데려온다.

아마도 기일이 가까워졌으리라.

반가움과 안타까움이 뒤섞여 묘한 감정이 된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이야기지만,

30년 넘게 내 삶에 머물렀던 사람의 이야기를 한 번쯤은 꺼내보고 싶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추모 콘서트가 열리고, 방송에서는 그의 선한 영향력을 다시 비춘다.

그 화면을 보고 있으면, 2014년 그 가을이 떠오른다.


그해 나는 신규 프로젝트 개발로 매일같이 새벽에 퇴근했다.

세 살짜리 첫째와 돌 지난 둘째를 하루 종일 혼자 돌봐야 했던 아내도, 매일이 버거웠다.

서로의 사정을 알면서도, 서로에게 여유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날도 그렇게 날이 바뀐 뒤에야 집에 들어왔다.


애들을 겨우 재우고 정리를 하던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당신, 너무 한 거 아니야?'라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나도 '고생했어'라는 말을 꺼낼 힘이 없었다.

그날은 그런 날이었다.



습관처럼 켠 휴대폰에서 ‘신해철 사망’ 속보가 쏟아지고 있었다.

처음엔 오보겠지 싶어 뉴스를 몇 번이나 눌러봤다.

그러다 문득, 핑— 하고 눈물이 났다.

아마도 내가 처한 현실의 고됨이 한몫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의 슬픔은 단순히 애정하던 아티스트 한 명의 죽음이 아니라

초등학생 때부터 30대 후반까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친한 형을 잃어버린 것에 기인했으리라.


갑작스러운 남편의 눈물은 울고 싶은 걸 꾹 참고 있던 와이프의 감정선을 건드렸고

우리 부부는 새벽 시간 꺼이꺼이 울었다.

서로 다른 이유로 시작된 눈물은

그 원인이 된 감정을 다 쏟아내고 나서야 끝이 났으며

그래서인지 이유를 물어보진 않았다.



테이프 세대였던 나의 등교가방에는 항상 신해철의 테이프가 몇 개씩 들어 있었고

실험적인 음악을 한다고 시도한 여러 음악들이 모두 마음에 든 건 아니지만

간혹 대중성이 결여된 음악이라는 비난을 하는 주변인들에게는

음악도 모르는 녀석들이라고 핏대 올려 맞서기도 했다.


'아버지와 나'의 가사가 너무 좋아 연습장에 따라 적어둔 걸

방 청소하다 발견한 엄마는

아들이 철들었다며 감동받기도 하고


토론의 패널로 참여해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생각을 거침없이 피력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할 말은 하고 살아야겠다는 인생의 가치관을 정하기도 했다.


음악과 방송을 통해서만 봐온 사람이었지만,

그는 내 생각의 방향을 바꾸었고,

내 삶의 자세를 세워주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게 참 고맙고, 또 그립다.


그의 노래 가사처럼,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우울한 삶을 살고 있긴 하나

어디선가 <그대에게>의 전주가 들리면 흥겨워하며

오~ 예를 흥얼거리는 반전도 있다.


이렇게 나는, 여전히

그가 남긴 흔적 속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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