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내야 채워지는 것들에 대하여
나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물건마다 사연이 있다.
책은 그 시절의 기억이고,
안 맞는 옷은 언젠가 살을 빼면 다시 입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다.
요즘은 플레이어조차 찾기 힘든 CD와 LP판은
언젠가 아들에게 물려줄 나의 유산이란 이름으로 남아 있다.
언젠가, 혹시나, 나중에.
내 삶은 늘 이 세 단어 사이에 머물러 있었다.
최근 아내가 ‘비우는 삶’을 시작했다.
아이들이 커서 못 입게 된 옷,
거실 구석을 차지하던 오래된 마사지기,
유행이 지난 옷들까지.
몇 주에 걸쳐 정리를 했다.
상태가 좋은 건 나눔으로 보내고,
임무를 다한 건 미련 없이 버렸다.
집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제자리였다.
내 물건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었으니까.
아이들 물건과 본인 물건을 다 정리한 아내가
이제 내 영역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작가 책이야. 버리면 안 돼.”
“이건 언젠가 꼭 읽을 거야.”
“이건 진짜 안 돼.”
이유는 많았다.
하지만, 변명 같았다.
“집도 좁은데 좀 치우고 가볍게 살자.”
아내의 말은 부탁이라기보다, 마지막 통보에 가까웠다.
손때 묻은 책들을 하나씩 꺼내 들었다.
이걸 마지막으로 펼쳐본 게 언제였더라.
'그래, 이제 놓아주자...'
하나씩 꺼내어 내놓았다.
버리고 나서야 알았다.
비워진 자리엔 허전함보다 묘한 해방감이 남는다는 걸.
물건을 정리하다가 문득 떠올랐다.
회사에서 껄끄럽게 느껴지는 몇몇 사람들.
멀어진 이유는 분명하지만,
어딘가에선 아직 미련이 남아 있었다.
다시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까.
혹시 그들이 먼저 손을 내밀면,
나도 잡을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마음 한구석에 그 관계를 쟁여두고 있었다.
나는 참, 비우는 걸 못한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잘 버려?”
내가 묻자, 아내는 단호하게 말했다.
“옷이든 책이든 1년 동안 손이 안 갔다면
그건 이미 마음이 떠난 거야.”
“그래도 유행은 도는 거고, 살 빼면 다시 입을 수도 있잖아.”
“그런 것들, 나도 있지.
그럴 땐 딱 1년만 더 두자고 생각해.
그때도 손이 안 간다면, 그건 옷이 아니라 미련이야.
그리고 보통 1년을 더 기다려도 결과가 달라지진 않지.”
“어쩌면 살이 빠지는 것보다, 옷이 늘어나길 기대하는 게 더 빠를걸.”
아내의 말은 꽤 오래 남았다.
결국 내가 붙잡고 있는 건
‘언젠가는 바뀔지도 모른다’는 희박한 가능성이었다.
그게 물건이든, 관계든.
이미 마음이 떠난 걸 붙잡고 있으면
결국 나만 무거워진다.
만약 내가 변하기 어렵다면,
만약 그 관계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제는 놓아줄 때다.
다시 읽지 않을 책,
다시 돌아오지 않을 관계,
다시 오지 않을 시절.
그걸 하나씩 비워내고 나면
집이 가벼워진다.
그리고 내 안에도 자리가 생긴다.
비워낸 자리엔 허전함보다
조금의 평화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