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의 마이크

소리질러

by 곱게자란아빠

어쩌면 ‘사는 게 바쁘다’는 말은,

좋아하는 걸 잠시 미뤄둔 사람들의 세련된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랬다.


나는 노래를 좋아했다.

아니, 좋아했었다가 맞겠다.

젊을 때는 목이 쉬도록 노래방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 단순한 즐거움이 내 하루를 꽉 채워줬다.


그런데 회사에 들어오고부터 노래방이 조금 달라졌다.

이젠 ‘나’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분위기’를 위한 공간이 됐다.

회식 2차 코스로 정해진, 의무의 장소.

흥이 나야만 하고, 흥을 북돋워야 하는 곳.


내가 좋아하던 축축한 발라드들은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이 분위기에서 그건 좀...’이라는 눈치가 무섭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늘 똑같은 노래를 불렀다.

평소엔 듣지도 않는, 하지만 다수가 아는 그 몇 곡.

그때부터 노래는 ‘즐거움’이 아니라 ‘숙제’가 됐다.


집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아내는 노래 부르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에 한 번, 집 앞 노래방에 같이 간 적이 있다.

그녀는 한 시간 내내 노래 한 곡 부르지 않고 박수를 쳐줬다.

그 얼굴에서 나는, 진심으로 고통을 봤다.

그날 이후, ‘노래방’이란 단어를 집에서 꺼내지 않았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바쁘고 피곤하니까, 만남의 목표는 ‘빨리 취하고 빨리 들어가기’.

한때 왁자지껄했던 노래방의 즐거움은 이제 추억으로만 남았다.

그렇게 나는 내가 노래를 좋아하던 사람이었다는 사실마저 잊고 살았다.


그런데 며칠 전, 팀 후배의 차를 얻어 타고 퇴근하는 길에,

“선배님, 노래 한 곡 하시겠습니까?”

처음엔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런데 이 친구,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차 안에서 에코 가득한 반주를 틀고 내 손에 무선 마이크를 쥐여줬다.


아이들과 장거리 여행 갈 때 차에서 놀려고 샀는데,

요즘은 그게 본인 출퇴근 취미가 됐단다.

“한 번 내지르고 나면 스트레스가 쫙 풀려요.”


결국 나도 질렀다.

‘최소 30W 출력, 가벼운 마이크가 좋아요.’

그의 조언까지 참고해서.


왕복 두 시간의 출퇴근길.

처음엔 혹시 내 목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갈까 조심스러웠다.

회사에서 길러진 ‘눈치력’이 여전히 강력했다.

하지만 그 조심스러움도 오래가진 않았다.


노래방에선 부를 수 없던 옛날 노래,

축축 늘어지는 발라드,

그리고 감히 도전 못 했던 고음의 곡들까지...

이제는 마음껏 부를 수 있었다.

내 차는 작은 밀실이자, 내게 허락된 무대였다.

그날의 스트레스는 마이크를 타고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이게 진짜 퇴근 후의 일탈이었다.


어제는 다른 후배와 함께 퇴근을 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오, 이거 뭐예요?” 놀라움 반, 그리고 ‘우리 부장이 이런 사람이었나?’ 하는 눈빛 반.

그런데 이 친구도 곧 신나게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쿠팡을 열고

무선 마이크를 검색하는 그를 보니,

신문물을 전파한 선구자의 뿌듯함이랄까.


집에 들어가자 아내가 걱정스레 말을 걸었다.

“오늘 말을 많이 했나 봐? 목이 다 쉬었는데.”


회의가 길었다는 상투적인 변명 대신,

내 안의 흥을 주체하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웃었다.


좋아하는 걸 다시 찾은 건 참 기쁜 일이지만,

어른의 삶은 여전히 조절을 요구했다.

그래도 괜찮다.

조금은 쉬어버린 목소리라도,

잊고 있던 '좋아하는 것'에 완전히 몰입해 버린 나를 찾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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