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자랑법

by 곱게자란아빠

지난 주말, 엄마와 오랜만에 가리비찜을 해 먹었다.

찜을 하며 나온 육수를 보시더니

“이거 버리지 말고 내일 칼국수 해먹으면 딱이겠다.”

한참 끓던 냄비 위로 김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식사를 마치고 남은 육수와 가리비를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으면서 뭐가 있나 한 번 들여다봤다.


역시나 냉장고는 조금 허전했다.

우유도 없고, 반찬거리도 거의 없었다.

아버지 돌아가신 뒤로 엄마는

먹는 일에 예전만큼 마음을 쓰지 않으신다.

있는 재료로 대충 끼니를 때우다 보니

냉장고가 늘 비어 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매번 같은 잔소리를 했다.

“엄마, 냉장고 좀 채워요. 너무 휑하잖아요.”


그날은 잔소리 대신 새벽배송 앱을 켰다.

칼국수용 생면을 먼저 담고, 우유도 담았다.

커피믹스만 드시던 엄마가

요즘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즐기신다고 했던 게 떠올라

쉽게 내려 마실 수 있는 드립백 커피도 넣었다.

어깨 수술 이후 무거운 걸 들기 힘드실 테니 식재료도 몇 가지 함께 담았다.

한참을 담다 보니, 장바구니가 어느새 꽉 찼다.


다음 날 점심 무렵,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친구들이랑 수목원 걷고 있는데, 너 점심시간이지? 잠깐 괜찮아?”


목소리부터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침 일찍 칼국수가 와서 점심 때 바로 해먹었어.

국물 맛이 아주 기가 막혀. 가리비 넣었더니 감칠맛이 다르더라.

그리고 커피도 참 편하고 좋더라. 밖에서 사 마시는 거랑 똑같아.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는데 아들 덕에...”


그 말투에서 알 수 있었다.

엄마는 전화 건너편 나에게 말하는 게 아니라,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그 말끝마다 살짝 묻어나는 뿌듯함이 귀에 남았다.


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조금 부끄러웠지만, 굳이 말을 끊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보낸 물건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자랑하고 계셨다.

우리 아들이 나를 이렇게 생각해준다는 사실,

그게 엄마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자랑거리였다.


생각해보면 나도 가끔 그런다.

누군가에게 내 아이 이야기를 슬쩍 흘린다.

엉뚱한데 기특했던 일,

어이없지만 웃음이 났던 순간 같은 것들.

내 아이가 나를 생각해준 마음을 자랑하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건, 부모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들키고 싶은 마음’이지 않을까.


예전 같았으면 나는 이렇게 말했을 거다.

“아휴, 엄마. 그런 얘기 좀 하지 마요. 별것도 아닌데.”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 말들 속엔 자랑이 아니라,

사랑이 숨어 있었다는 걸.


그래서 오늘은 그냥,

엄마의 자랑을 끝까지 다 듣고만 있었다.

그게 엄마의 방식이니까.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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