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경고등과 작은 물집

by 곱게자란아빠

아침 출근을 위해 시동을 걸자 익숙한 알림이 떴다.

[엔진오일 교체]

벌써 교체할 때가 됐나 싶은데,

계기판 한구석에 노란색 경고등이 하나 더 들어와 있었다.

'저게 뭐였더라.'

잠깐 떠올리려다 말았다. 요즘은 기억해 내려 애쓰는 일조차 피곤하다.

차가 굴러가는 데 당장 문제가 생긴 건 아니니까.

그냥 기어를 넣고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토요일 오전은 정비소에서 보내겠구나.'

머릿속은 벌써 주말 스케줄을 계산하고 있었다.

정비소 소파에서 종이컵 믹스커피를 홀짝이고 있을 내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이럴 거면 다음 차는 전기차로 바꿀까?'

스스로도 확신 없는 고민을 하며 출근길 정체 속에 끼어들었다.


오후쯤 자동차 서비스센터에서 단체 문자가 왔다.

[기온 급강하로 인한 공기압 경고등 안내. 적정 공기압으로 보충 바랍니다.]

'아, 아침에 그 노란 경고등이 이거였구나.'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경고등 하나에 놀라 서비스센터에 전화한 사람들 때문에 보낸 문자겠지.

문자를 읽고서야 주말 할 일 목록에 '공기압 체크'를 한 줄 더해 넣었다.


이 차를 탄 지도 어느덧 10년 가까이 되어간다.

처음엔 이러지 않았다.

오일 교체 주기는 칼같이 지키고, 미세한 소음 하나에도 귀를 기울였고,

문콕이라도 당할까 봐 주차장 기둥 옆자리를 찾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계기판의 경고등 따위는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사람이 되었다.

지극 정성으로 관리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큰 문제만 없으면 됐지' 하는 태도만 남았다.


가만 보면 차만 그런 게 아니다.

내 몸을 대하는 태도 역시 이 오래된 자동차와 닮아 있다.

언젠가부터 몸이 보내는 신호에 무뎌졌다.

옆구리가 찌릿하게 아파도, 입버릇처럼 '아이고 허리야'를 내뱉으면서도

‘좀 쉬면 괜찮겠지’ 하고 넘긴다.

병원 갈 시간도 없는데 유난 떨지 말자는 생각이 앞선다.

다독임이라기보다 슬며시 방치에 가까운 태도다.


건강검진 결과지에는 특이사항이 해마다 조금씩 늘어난다.

예전 같으면 인터넷을 뒤져 원인을 찾고 재검 예약도 했겠지만,

이제는 그 결과지조차 책상 한쪽으로 밀어두기 바쁘다.

'이 정도 연식이면 이 정도 고장은 달고 사는 거지.'

차든 몸이든, 나이를 먹으면 삐걱거리는 건 자연스러운 거라며 합리화한다.

경고등이 켜진 채로 달리는 자동차처럼,

통증 몇 개쯤은 달고 하루를 보낸다.



주말 아침, 오일을 교체하고 공기압도 채웠다.

그런데도 노란 경고등은 꺼지지 않았다.


정비 기사님은 타이어 주변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공기압 문제가 아니네요. 센서가 나갔어요. 저것도 결국은 소모품이라...

오래되면 고장이 나요."

"비용은 얼마나 하나요?"

"개당 13만 원이요. 네 바퀴 다 교체하면… 52만 원 나오겠네요.”


내 눈빛에서 당혹감을 읽었는지, 기사님이 멋쩍게 웃으며 덧붙였다.

"근데요, 사실… 그냥 타셔도 됩니다.

타시는 데는 아무 문제없어요. 주기적으로 공기압 체크만 잘해주시면 돼요.

저라도 그냥 탑니다."


정비소를 나왔다.

노란 불빛을 데리고.

정비 기사님의 조언이 없었더라도, 나는 그냥 탔을 거다.

'몸도 조금 아프지만 그냥.'

'차도 조금 아프지만 그냥.'

예전에는 '고쳐야 한다'가 먼저였다면,

이제는 '그래도 굴러가면 됐다'가 먼저다.


나이가 든다는 건

모든 경고등을 끌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어떤 불빛은 켜진 채로도

그럭저럭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집에 돌아오니 작은 아들이 구급함을 꺼내 분주하게 뭔가를 하고 있었다.


"아들, 뭐 하냐?"

"발에 물집이 생겼어요."


가만 보니 이걸 '물집이라고 해도 되나?' 싶은 크기였다.

손톱 반쪽만 한 조그마한 것에 소독하고, 연고 바르고, 방수밴드까지 깔끔하게 붙이고 있었다.


"아들, 너무 과한 거 아니냐? 그냥 놔둬도 되겠는데."


아들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빠. 이런 거 제대로 소독 안 하면 곪아서 나중에 더 아파요."


뜨끔했다.

나는 몸의 신호를 '그냥 그러려니' 넘기고,

차의 경고등도 '나중에 보자' 하고 미루고,

내 일상의 작은 고장들을 대충 다루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아들은, 자기 발의 콩알만 한 물집 하나에도

정성껏 응급처치를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경고등이 켜진 걸 무시하는 건

어른스러움이 아니라 그냥… 어른이 된 버릇 같은 건가.


아들의 발에 붙은 방수밴드를 보면서 생각했다.

'음… 뭐든, 너무 방치하는 건 좀 아닌가.'

노란 경고등도,

내 몸의 신호도,

그리고 마음속 어딘가의 작은 물집 같은 것들도.

오늘 하루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들이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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