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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깔 있네?

폭발하지 않고 하루를 버티는 법

by 곱게자란아빠

회사에서의 하루는 대체로 조용하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서류 넘기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의 큰 한숨 소리

그 사이를 채우는 건 '평정심'이라는 이름의 공기다.


이곳에서는 흔들리지 않는 게 미덕이다.

화내지 않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매끄럽게 일하는 사람을 '프로페셔널'이라 부른다.

나도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감정을 삼키는 게 능숙함의 증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단단하지 않다.

조용할수록, 그 안에서 무언가가 끓는다.

그리고 그건 어느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틈으로 새어 나온다.


얼마 전 들은 이야기 하나.

엘리베이터 안,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운 아침이었다.

가득 찬 사람들 사이에서 한 부장이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고 했다.

누구를 향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한순간, 너무 쌓인 게 넘쳐버린 거였다.


그 일은 금세 메신저를 타고 사무실에 퍼졌다.

'정신이 좀 이상한 거 아니야?'

'임원한테 깨졌다던데?'

사람들은 각자 다른 이유를 덧붙였고, 그 부장의 이름은 오랫동안 회자됐다.

그의 한순간은 그렇게 누군가의 흥밋거리로 소비됐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터질 수 있지 않을까.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마음속엔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작은 화약고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인정하게 됐다.


비슷한 장면을 내 눈으로 본 적도 있다.

함께 일하던 동기가 어느 날 키보드를 들어 바닥에 던졌다.

소리가 터졌고, 사무실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나갔다가, 다음 날 새 키보드를 들고 다시 출근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성깔 있네’

‘요즘 스트레스가 많았나 봐.’


하지만 나는 그 장면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그의 분노는 성깔이 아니라,

오래 눌러둔 마음이 부서진 소리 같았다.


아마 그는 그날, 사직서 대신 키보드를 던졌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이 무너질 것 같았을 테니.


그 일 이후로 나는 ‘성깔’이라는 말을 쉽게 쓰지 않게 됐다.

누군가의 폭발은 대부분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야 하는 곳에서,

결국 가장 약한 지점이 먼저 깨질 뿐이다.


우리는 매일 부서진 키보드 같은 마음을 안고 일한다.

겉으론 멀쩡하지만, 안쪽엔 이미 금이 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새 키보드를 들고 다시 출근한다.

그건 어쩌면 버티는 사람들의 방식이자,

가장 조용한 복원의 의식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내 안의 평정심을 점검한다.

폭발하지 않고 이 하루를 건너가기 위해,

그리고 누군가의 조용한 울음을 알아보는 사람이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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