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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의 계절

by 곱게자란아빠

평가 시즌이 되면 회사 분위기가 달라진다.

시작은 우선 본인 평가부터다.

올해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

단계는 다섯 개. ‘참 잘했어’, ‘잘했어’, ‘평균’, ‘좀 못했어’, ‘매우 못했어’.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본인이 매긴 점수는 1차 평가자, 다시 2차 평가자를 거쳐 결국 연봉을 정하는 데이터가 된다.

난 1차 평가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내가 열어보는 본인 평가 결과는 늘 비슷하다.

절반은 ‘올해 평균은 했다’, 나머지 절반은 ‘참 잘했다’.

실제로 ‘참 잘했다’의 비율은 전체 인원의 10퍼센트 남짓으로 정해져 있는데, 절반 가까이가 스스로를 거기에 올려둔다.

아무리 봐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럴 땐 잠시 멈칫한다.

정말 본인은 그렇게 믿는 걸까?

아니면 제도가 그렇다 보니 스스로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 걸까?


평가 면담을 위해 마주 앉는 시간은 늘 어색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농담을 나누던 동료가, 갑자기 점수를 매겨야 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순간.

웃음기 빠진 대화 속에서 나는 설명해야 한다.

당신의 평가가 조금은 과했다는 것을. 상위 평가를 줄 수 없는 이유를. 기분이 나쁘지 않게, 그러나 분명히.

그 줄타기는 언제나 아슬아슬하다.


"인정할 수 없어요! 나 말고 누가 잘했는데요?"

한번 잘못 디딘 발의 결과는

그냥 끝이다.



예전엔 달랐다.

내가 신입이었을 땐 평가는 사실상 연차 순서였다.

진급할 차례가 된 사람은 자연스럽게 높은 점수를 받고, 그렇지 않으면 낮게 받았다.

일을 많이 하거나 적게 하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니 면담 같은 것도 크게 의미 없었다.

“올해 진짜 고생했는데, 알지? 상황이 그렇다 보니.” 이런 모호한 말들로 모든 게 덮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투명하다.

일을 잘하면 높은 점수, 높은 점수면 빠른 진급. 연차는 더 이상 기준이 아니다.

제도는 합리적이 되었고, 그만큼 각자 자기 어필도 치열해졌다.


본인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관대하다.

그래서 면담은 나를 소모시킨다.

"스스로를 조금 높게 보신 것 같네요."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 수많은 말을 돌리고 돌린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역할을 연기하다 보면 에너지가 바닥난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한다.

어차피 본인 스스로 열심히 했다고 여긴다면, 내가 굳이 아니라고 말해야 할까.

월급을 내가 주는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악역을 맡아야 하는 걸까.


내 마음을 들킨 걸까?

올해는 2차 평가자의 특별 주문까지 내려왔다.

상위 평가 인플레이션이 없도록 근거를 명확히 기록하고, 면담을 통해 불만을 최소화하라는 것.

결국, 가장 껄끄러운 과정의 책임을 온전히 떠넘기겠다는 말로 들렸다.


며칠 전 면담 중에 궁금함을 물어봤다.

“올해 본인이 평균 정도 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왜 ‘참 잘했다’로 평가를 했나요?


잠시 머뭇거리던 동료가 웃으며 대답했다.

“평가는 객관적으로 낮게 나올 테니까요. 저라도 저를 높게 평가해주고 싶었어요.”


그 말에 나도 따라 웃었다.

하지만 분명, 우리 웃음의 결은 서로 달랐을 것이다.

그의 웃음에는 체념과 자기 위안이,

내 웃음에는 미안함과 씁쓸함이 뒤섞여 있었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 다른 이유로, 같은 계절을 힘겹게 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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