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회사 입사할 때 시험 쳤어?"
중2 아들이 저녁밥을 먹다 말고 물었다.
요즘 들어 미래라는 것이 슬쩍 자기 그림자를 드러내는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럼, 시험 쳤지."
"그 시험은 어떤 거야?"
잠깐 생각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아이큐 테스트 해봤지? 그거랑 비슷했던 것 같은데..."
"그럼 아이큐가 높으면 회사 일을 잘해?"
"음… 글쎄."
정말 도움이 될 만한 답을 할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
아들은 바로 다음 질문을 던졌다.
"기억나는 문제없어?"
"아... 이런 게 있었어.
몇 달 동안 준비한 중요한 업무의 최종 발표가 갑자기 오늘로 앞당겨졌어.
근데 집에 급한 일이 생겼대. 그럴 때 어떻게 할 거냐? 뭐 그런 문제."
두 아들은 동시에 "오..."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역시 수학 문제보다 이런 게 더 재미있나 보다.
"집에 급한 일이 뭐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큰아들이 은근히 자기 의견을 밀기 시작했다.
"그럼 이렇게 해보자. 너희랑 몇 달 전에 약속한 가족여행이 있다고 하면?"
큰아들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
"모범답안은 가족여행 미루고 회사 업무 처리하는 거 아냐?"
어쩐지 그 말투가 낯설었다.
언제 이렇게 어른처럼 말하게 되었을까.
둘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지. 그 여행이 해외라면? 비행기 표도 취소 못 할 텐데. 우리가 손해야."
역시 둘째는 둘째답게 현실부터 챙긴다.
"그래도 회사에 합격하려면 회사가 좋아할 답을 해야지.
가족여행 때문에 업무 안 하면 회사 입장에서 문제잖아."
큰아들은 이미 면접관의 마음까지 헤아리고 있었다.
둘째도 지지 않았다.
"그래도 가족여행은 먼저 잡힌 약속이잖아. 회사 일은 나중이고.
회사엔 사람도 많으니까 다른 사람이 하면 되지."
둘은 마치 토론 수업이라도 듣는 듯, 자기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래서 아빠는 뭐라고 했어? 정답이 뭐야?"
결국 큰아들이 묻는다.
"정답은 없어."
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험을 본 뒤로 단 한 번도 떠올려본 적 없는 문제라,
지금의 나로서는 답을 알 수 없었다.
"그럼 아빠는 그때 뭐라고 대답했어?"
"글쎄... 지금이라면 둘째 말에 가깝겠지만,
그땐 아마 형처럼 답했을 거야."
둘째가 입을 삐죽였다.
"에이, 솔직하게 답해야지. 입사하려고 거짓말하면 안 되지."
큰아들이 바로 받아쳤다.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하고 있네.
세상엔 그때그때 눈치 보고 달라지는 문제도 많아.
엄마한테 혼날 때, 너 진짜 반성해서 ‘죄송합니다’라고 해?
그냥 덜 혼나려고 하는 거잖아."
둘째는 살짝 머쓱해졌다.
아이들 얘기를 듣다 보니 문득 오래 전의 내가 떠올랐다.
그때는 그게 맞는 답이라고 믿었는데,
지금은 또 다른 마음으로 같은 문제를 바라보게 된다.
입사시험 문제엔 정답이 없었다.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내가 고른 답은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모양이 바뀌고,
그 바뀐 마음이 나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회사보다 가족을 먼저 두게 된 것도,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이고 싶어진 것도,
시간이 흘러 만들어진 나의 새로운 답일 뿐이다.
언젠가 이 아이들도 자기 앞에 놓인 문제들을 풀어가겠지.
아마 뚜렷한 정답이 없는 경우도 많겠지만,
그래도 그 순간 자신의 마음을 따라 선택한 답이라면,
그게 바로 그때의 가장 정확한 답일 것이다.
"너희 둘 다 정답이야. 합격했어!!"
자리를 일어나며 엄지 척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