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종종 마주치는 사람이 있다.
10층에서 타는 아저씨.
자연스러운 흰머리, 옷차림은 과하지 않지만 은근한 고급스러움이 있다.
학생처럼 한쪽 어깨에 멘 백팩,
그리고 학생들 레포트로 보이는 A4 서류 뭉치가 잔뜩 들어 있는 쇼핑백.
나는 자연스럽게 ‘교수님이겠구나’ 하고 판단했다.
그 아저씨에게는 늘 묘한 향이 따라다녔다.
서실에서 풍길 것 같은 먹물 향 같기도 하고, 막 뒤집은 흙냄새 같기도 하고,
오래된 책 페이지를 넘길 때 공기 중으로 확 퍼지는 특유의 향 같기도 했다.
딱 규정하기 어려웠지만, 나의 후각 세포를 깨우는 설레는 향이었다.
‘문과 계열 교수님이겠구나.’
그의 옷차림과 향기는
책이 잔뜩 쌓인 연구실에서 두꺼운 문학사 책을 읽으며,
흰머리를 옆으로 넘기는 중년 교수님의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했다.
도대체 무슨 향수일까?
아니면 저 분 집에 배어 있는 향기일까?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향 취향’이 드러나면서,
나는 그 미지의 향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이 묘한 향이 너무 고급스러워서
검색도 해보고, 아내에게도 물어보고,
회사 동료들에게까지 이야기를 꺼냈다.
다들 아는 척 한마디씩 했다.
“샤넬 라인에 그런 거 있어요.”
“우디 계열일걸요?”
하지만 누구도 정확히는 몰랐다.
흙냄새 향수, 먹물 냄새 향수라는 질문에 정답을 기대한게 애초에 잘못이겠지만.
그러던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바로 그 향이 스쳤다.
익숙했지만 늘 스쳐 지나가기만 하던 그 냄새가
오늘따라 더 또렷했다.
“이 향이야! 내가 말했던 그 향!
10층 교수님이 방금 탔었나 봐.”
어느새 10층 아저씨는 내 머릿속에서 당연히 교수님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거… 내 옆자리 남자 선생님한테서 나는 냄새인데?”
“그래? 무슨 향인지 알아봐 줄 수 있어?”
아내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결정타를 날렸다.
“이거 전자담배 냄새야.”
“…”
“본인은 전자담배라 냄새 안 난다고 생각하겠지만,
나 이 냄새 때문에 죽겠어…”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 와르르 무너졌다.
몇 달 동안 찾아 헤매며 향수 브랜드 리스트까지 만들어 놓았던 그 향이
전자담배라니.
내가 고급지다고 느꼈던 향은
어쩌면 향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와
내가 은근히 기대했던 이미지였나 보다.
사람에 대한 인상은
이렇게 별것 아닌 데서 만들어지고,
또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기도 한다.
인상을 찌푸린 아내와 달리
나는 여전히 그 향이 나쁘게 느껴지진 않았다.
전자담배든, 오래된 책 냄새든,
어쨌든 내 하루를 한 번쯤 멈춰 세웠던 향이었다는 건
사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