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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내자 Feb 17. 2023

오염된 언어를 제거하기

은유 "쓰기의 말들" 중,





"작가님의 삶에서 폐기된 언어는 무엇이고, 새롭게 태어난 언어는 무엇인가?"


은유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고 '기존의 오염된 말로는 내 생각과 삶을 설명할 수 없었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며 독자가 한 질문이다.



작가님 대답 : '애가 공부 못하면 어떡하지'(폐기된 언어)



글쓰기의 최전선같이 밀도 높은 글을 쓰신 작가님의 대답치곤 소박했다.

뭔가 거창한 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허허.

은유작가님도 나랑 같은 '엄마'구나.

동질감을 느끼는 순간 마음이 기운다.

그다음 문장에 눈길이 간다.



여러 사람이 글로 쓴 구체적 일상, 내밀한 고백, 치열한 물음을 읽고 말하고 곱씹으며 나도 모르게 불안증이 가셨다. 성적과 행복이 비례하지 않아서 안도한다는 게 아니라, 삶은 성적이나 취직 같은 한두 가지 변수로 좋아지거나 나빠질 만큼 단순하거나 만만하지 않다는 것, 부단한 사건의 이행 과정이지 고정된 문서의 취득 수집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은유 "쓰기의 말들 " p.37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다.


나에게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은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가 '독서'를 해야 했다. 아이가 독서를 하려면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집에서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단다. 책 읽는 시늉을 시작했다. 책을 어설프게 읽다 보니 활자 그대로를 아이에게 강요했다. 그러나 아이는 내 마음대로 하지 않았다. 책을 던지고 고함을 지르고 아이는 울고 나는 좌절하는 일들이 반복.


나에게도 '오염된 언어'가 많다.



나는 은유작가님의 문장에서 '성적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아'까지만 이해했다. 비례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서'가 붙으면 뒤에 따라오는 성찰이 있어야 한다. 아직 거기까지는 닿지 않았다.   


삶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지만 아이의 삶은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 이런 마음이 '오염된 언어'의 씨앗이겠지.


이미 발아한 오염된 언어를 제거하고 새로운 언어의 씨앗을 품기 위해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끄적여본다.


아직까지는 '여러 사람이 글로 쓴 구체적 일상, 내밀한 고백, 치열한 물음을 읽고 말하고 곱씹'는 중에 머물고 있지만,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은 평생을 이어가야 하는 고행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를 단련시키는 일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으니,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죽고 난 후 오염되지 않은 사리 한 개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오염된 언어를 제거하기 위해 붙들고 있는 책들
은유작가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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