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탈출할 수 있을까?

돌고 돌아 여수

by 헤레이스

첫 번째 미로를 탈출한 날, 끝없는 고속도로 위에서 나는 내 삶의 방향을 다시금 떠올렸다.


강원도 화천에서 전라도 여수까지 371.3km, 우리는 새로운 둥지를 틀기 위해 장장 7시간의 대이동을 감행했다. 마치 연어가 본능적으로 고향을 찾아 떠나듯, 내 삶의 궤적도 다시 여수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이 여정이 단순한 회귀가 아니라 또 다른 미로의 시작이라는 것을.



순탄하게 다음 미로로 접어들 것이라 믿었던 우리의 길은 예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그날, 누군가의 교통사고로 꽉 막혀버린 도로처럼, 우리의 끝과 시작 또한 그렇게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임을 예견했던 걸까. 종을 치면 끝날 줄 알았던 미로. 출구가 명확히 보이던 첫 번째 미로와 달리, 이번에는 지도도, 방향을 알려줄 사람도 없다. 얼마나 걸릴지조차 알 수 없는 미로 속에서 우리는 또다시 길을 찾아 헤맨다.



돌고 돌아 다시 여수.


결혼 전부터 나는 군인의 아내로 평생을 살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혼자 출발했던 여수를 떠나, 이제는 네 식구가 되어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남편은 전역을 했다. 이제 우리의 역할이 바뀐다. 남편은 새로운 길을 찾아 공부를 시작하고, 나는 경제적 가장이 되어야 했다. 사실 화천에서의 시간을 제외하면 줄곧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왔기에 두려움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양육과 일을 병행하는 것은 예상보다 훨씬 버거웠다.


남편은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렇게 우리는 또다시 주말부부가 되었다. 여수에서 용인으로, 월요일이면 떠나 금요일에 돌아오는 삶. 그래도 남편이 돌아오는 날이면 작은 행복이 있었다. 티라미수 조각 케이크를 기다리며 그를 맞이하는 일. 그리고 월요일이 되면, 다시 아빠를 배웅하는 아이들의 ‘아빠요일’이 찾아왔다. 어린이집에 가야 할 날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시간이었기에 아이들은 기꺼이 월요일을 아빠와의 특별한 날로 여겼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친정이 가까이 있어 숨 쉴 틈이 있었고, 나는 여전히 아이들을 가르치며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냈다. 정신없이 30대가 흘러갔다. 그리고 남편의 졸업과 함께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드디어 우리는 어느대 다섯 식구가 되어 온전히 함께 살게 되었다. 24시간, 365일. 이제는 주말부부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 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 우리는 9년의 여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향했다.

317.4km의 거리만큼 또 다른 변화를 준비하며.



여수(317.4km) → 서울(191.1km) → 안동(224.8km) → 장성(271.3km) → 의정부(72.0km) → 화천(371.3km) → 여수(317.4km) → 서울.



이 반복되는 흐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얼핏 보면 우연처럼 보이지만, 나는 이 모든 길 위에 계획하심이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여전히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 내가 마주한 두 번째 미로는 첫 번째와는 다르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길은 예측할 수 없이 바뀌고, 이제는 나 혼자가 아니라 다섯이 함께 출구를 찾아야 한다. 아이들은 더 이상 졸졸 따라오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 또한 각자의 방향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함께하지만 동시에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나는 남편의 삶의 목표를 나의 목표로 삼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걷고 있지만, 그 길이 쉽지만은 않다.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이상적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끝을 알 수 없는 미로를 걸어가고 있다. 마치 도라에몽이라도 불러 출구를 만들어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도 있다.





이 미로에서 우리는 과연 탈출할 수 있을까?


오늘도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한 의문이 아니다. 나는 답을 찾기 위해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한다. 때로는 길이 보이지 않아도, 때로는 끝없는 회색 벽이 앞을 가로막아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미로는 단순히 벗어나야 할 곳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며 만들어가는 길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이 길의 끝에서 지금의 나를 돌아보았을 때, 나는 후회 없이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끝까지 걸어왔고, 서로를 붙잡으며 헤쳐 나갔다고. 오늘도 나는 그 답을 찾기 위해 다시 한 걸음 내딛는다. 그 길이 어디로 향하든, 우리는 함께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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