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만났냐고 물어보니 학교 앞 별다방에서 시험 공부하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아있던 백인 아이가 궁금한 듯 쳐다보더니 무슨 공부하냐고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알게 됐다고 했다.
인상도 좋고 얘기도 곧잘 통하고 성격도 괜찮은 거 같아 이래저래 연락처를 주고받고 친구들과 함께 몇 번 더 만나다가 교제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만나지 5개월쯤 되었다고 했다.
컬리지 졸업하고 지금은 군대에 있는데 조금 있으면 제대할 거고 그 후엔 대학원 로스쿨 갈 거라 시험 준비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냐며 서로 잘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부부도 딸이 가끔씩 이야기해 주는 정보에 따라서 그 아이에 대해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미국의 아빠들은 딸이 남자 친구를 데리고 오면 일부러 이름을 다르게 부른다고 한다.
일종의 질투심의 표현이다.
남편도 토마스라는 그 아이의 이름을 듣자마자 '뭐? 토마토'라고 했다. 이 정도는 아주 약한 거다.
어떤 아빠는 인사하면서 아예 다른 이름을 부른다고 한다. 예를 들면 '잭'이란걸 뻔히 알면서 '하이! 폴'이라고 부르는 거다.
남편은 딸의 연애사가 궁금할 때마다 '토마톤지 뭔 지하는 그놈은 잘 있냐?'라고 물어봤다.
플로리다에서 태어난 토마스는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셔서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캘리포니아로 왔다고 했다. 거기서 혼자 아이를 키우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그 사이에 동생도 태어나 네 식구가 살고 있다고 했다. 친아버지는 플로리다에서 재혼해서 두 명의 자녀를 낳고 살고 있다고 했다.
토마스는 당뇨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버지니아에서 훈련이 끝날 때쯤 쓰러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소아당뇨진단을 받게 되었다고 했다.
그것 때문에 더 이상 군대생활을 할 수 없어서 제대를 하고 대학원진학을 하기로 했다고 했다.
알면 알수록 대략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부모의 이혼문제는 이성적으론 미국에서 흔한 일이니 그럴 수도 있지 생각했다.
그런데 몸이 아픈 건..... 아직 20대 초반인데 당장 결혼이라도 하겠다고 하는 게 아니니 마땅히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 아이의 잘못도 아니고 아프다고 못 만나게 한다는 건 말도 안 되고 딸이 좋은 감정을 가지고 만나고 있는 아이이니 있는 그대로 환영하고 사랑해 주기로 했다.
혹여 시간이 지나 둘 사이가 더 깊어지기라도 해도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의외로 미국 아이들은 결혼을 빨리하는 경우도 많고 딸의 친구들도 결혼하는 친구도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가 소중한 만큼 그 아이도 소중한 아이라 생각했고 그리고 반대의 상황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상처 입은 아이가 안쓰럽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에 딸에게 물었다. 토마토는 그 일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냐고?
'그냥... 그렇게... 무덤덤해하는 것 같아.'라고 하면서도 한 번은 그 얘기를 하면서 그랬다고 한다.
자기 맘속에는 울고 있는 어린 토마스가 있다고......
그렇게 두 달이 더 지난 후에 아주 가깝게 지내는 지인이 꽃집을 오픈하는 날이었다.
데이트 나가는 딸에게 그 아이가 궁금하기도 해서 꽃집 오픈 하는데 놀러 오라고, 와서 밥도 먹고 가라고 했다.
딸은 못 이기는 척 남자친구에게 한번 물어보고, 간다고 하면 잠깐 들르겠다고 했다.
그리곤 진짜 왔다.
자연스러운 듯 어색한 첫 만남이 그렇게 이루어졌다.
동글동글하면서도 군인답게 다부진 모습의 아이가 자신감과 긴장감을 함께 가지고 나타났다.
어색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하며 인사했다.
허리도 구부리고 한 손으로 다른 한 손의 팔꿈치를 살포시 잡고 남편과 악수를 했다.
그 모습이 예뻤는지 남편은 나중에 아이들이 떠나자 '고놈참... 고놈참...' 하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두 아이는 꽂을 구경 한다며 들어가서 꽃을 함께 고르기도 하고 직접 고른 꽃으로 꽃다발을 만들었다.
토마토는 그 꽃다발을 내게 내밀었다.
엄마 가져다 드리라고 했더니 아니라며기어코 내게 안겨주었다.
딸의 남자친구가 주는 꽃다발을 받으면서 남편을 처음 엄마에게 인사시켰던 날이 떠올랐다.
남편이 내민 평생처음 받아보는 꽃다발에 활짝 웃던 엄마 얼굴이 떠오르며 기분이 묘했다.
이것저것 가벼운 얘기도 나누고 준비된 음식을 먹고 딸이랑 토마토는 데이트를 하러 갔다.
궁금한 것도 많고 하고 싶은 얘기도 많았지만 언어적 한계도 있고 마냥 딸아이한테 소소한 것까지 통역해 달라고 할 수도 없으니 쿨함을 가장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남편과 나는 바닷가로 드라이브를 갔다.
아마도 둘 다 기분이 묘해서 그랬던 것 같다.
어떤 거 같냐고 물어보니 더 지켜봐야지 하며 말을 아꼈다.
걱정스러운 맘은 접어두고 그저 환영하는 맘으로 두 아이가 건강하고 예쁜 사랑을 하길, 그래서 둘 다 서로로 인해 더 성장하길 기도하며 바라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