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미곰미 Apr 03. 2024

딸과 단둘이 떠나는 해외여행기 (4)

꼬리 잘린 여행이지만.....

여행 셋째 날엔  오르세미술관으로 갔다.

기차역이었던 장소를 미술관으로 개조했다는  미술관의 역사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내가 교과서를 통해 본 그림들 중 가장 많은 그림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밀레. 모네. 마네. 잔등등 19세기 근대 화가들의 작품이 가득한 곳이라 더 기대가 된 곳이었다.

그 기대감에 보답이라도 하듯 너무 멋진 곳이었다. 기차역을 새롭게 리모델링 한 곳이지만 역의 모습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고 세련된 전시관도 좋았다.

무엇보다 정말  방대한 양의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더 놀라운 건 그렇게 많은 양의 작품들이 이 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양의 1/3 수준이라는 사실이었다.

딸과 함께 감탄사를 연발하며 미술관 구석구석을 정말 하루종일 돌아다녔다.  

미술관내에 있는 카페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도 나머지 전시관을 돌아다니며  그 속에 흠뻑 빠져있었다.

미술관에 있는 기념품샵에서 이제 10분 후에 문을 닫는다는 안내방송을 듣고서야 부랴부랴 나왔으니 정말 아침부터  온종일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낸 거였다.

여전히 밤이면 심해지는 기침과 거기다 시차까지 더해져 잠을 설치는 통에 컨디션이 좋은 상태가 아님에도 오랜 열망과 기대감에 피곤한 줄 모르고 시간을 보냈고 너무 만족했다.



여기까진 그런대로 좋았는데......

아픈 것도 잊고 너무 열심히 놀았던 탓인지 그날 밤엔 정말 기침을 하느라 밤을 꼴딱 새우다시피 했다.  

 다음 날엔 비가 오지 않는다는 일기예보를 미리보고 베르사유 궁전을 보러 가기로 했었다. 그러나... 로비로 나오니 또 비가 내리고 있었고 지하철 역으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바람까지 불어 더 추웠다.

 물론 한국의 겨울바람에 비할바는 아니었지만 봄옷을 꺼내 입은 날 맞이하는 꽃샘추위처럼 찬바람이 비와 함께 하니 매서웠고 그래서 선 듯 가기가 망설여졌다.

그런 상태로 하루종일 파리 외곽까지 갈  자신이 없었고 무엇보다 그날 아침에 딸이 목이 아프다고 했던 게 맘이 편치 않았다.

나한테 옮은 건 아닌지.... 곧 괜찮아 질거라 생각하고 진통제로 버텼는데 자꾸 더 상태가 안 좋아지는데 혹시 딸도 그렇게 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점점 더 심해져서 다음 주 출근하는데 차질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싶은 생각도 더해져 더 선뜻 걸음이 내디뎌지지  안 났다.

망설이는 내 맘이 눈치채였는지 딸이 호텔 가서 좀 있다가 갈까? 하길래 그러자고 하고 다시 올라왔다.

올라오자마자 난 침대에 쓰러지듯이 누웠고 이불속으로 폭 들어가 금방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자다가 눈을 떠보니 딸도 잠을 자고 있었다. 둘 다 시차적응하랴 구경하랴 파리의 쌀쌀한 날씨에 적응하랴 피곤했던 탓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자고 일어나니 오후가 되었고 우린 밤에 에펠탑을 보러 가는 걸로 계획을 바꾸었다.

다음날 낮시간에 가고 싶었지만 이미 예약이 다 찬 상태라 자리가 없었고 그나마 당일 밤 8시밖에 예약할 수 없어서 그렇게 했다.

한숨 자고 난 후라 컨디션이 좀 괜찮은듯해서 단단히 무장을 하고 나섰다.

일단 에펠탑 근처로 가서 구경하고  근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아니면  4시가 지난 늦은 오후시간이어서인지 관광객도 많지 않았다. 에펠탑 근처에 많다는 기념품을 파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혹시  악명 높은 소매치기 무리를 만나게 될까 마음 단단히 먹었는데 너무 한산해서 오히려 놀라웠다.

올해 파리에서 올림픽이 열린다고 해서 소매치기 단속을 열심히 하고 있단 얘기를 얼핏 듣기도 했는데  정말 그런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높은 에펠탑 전체가 나오는 사진을 찍느라  폰의 기울기를 조절하고 최대한 몸을 바닥으로 낮추어야 했다.

그렇게 난이도 상의 사진을 몇 장 찍고 타워에 올라가는 시간이 되기까지 남은 시간 동안 근처에서 저녁을 먹었다.

마침 레스토랑에서 달팽이 요리를 먹을 수 있어서 시도해 보기로 했다.

이 별로였던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골뱅이가 더 맛있겠다는 얘길 했더니 딸이 엄마가 전에도 TV 보며 그 얘길 했다고 해서 함께 웃었다.  

자녀들과 여행 갈 때 엄마들의 금기어가 있다고 했는데 난 그중에 하나를 한셈이다.

이거 보려고 여기까지 왔냐?

이돈 주고 그걸 해?

이거 먹으려고 온 거야?

음식이 짜다, 달다, 비싸다 등등.

무슨 마음인지 너무 잘 알 거 같았다.

가끔 양가 어르신들을 모시고 여행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 그런 말을 들을 때의 기분이 어떤 건지 느껴봤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딸이 하는 어떤 거에도 토 달지 않으려 했고 어차피 이번 여행은 뭔가를 하는 거보다 함께 하는 시간이 중요했기에 사실 상관이 없기도 했다.

아니 아무것도 안 해도 상관없었다.

그저 딸과의  여행을 통해 함께 추억을 만들어 가는 것만으로도 좋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한바탕 웃으며 저녁을 먹고 예약한 시간에 에펠타워에 갔다.

2층까지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서 내렸다. 일단 그곳에서 다 내려서  잠시 시간을 가진 후에  다시 꼭대기 전망대까지 가는 엘리베이터를 갈아타야 하는 거였다.

2층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파리의 야경에 감탄하며 야경을 배경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여전히 바람은 차가웠다.

전망대까지 가는 걸 예약했지만 나는 딸이 걱정되고 딸은 내가 걱정되어 전망대는 가지 않기로 했다.

다음에 아빠랑 올 때 볼 것도 남겨둬야지라는 이유 아닌 이유로 위안 삼으며  내려왔다.

2층도 결코 낮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꽤 높은 타워 전망대를 밤에 올려다보니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는 난 더 엄두가 나지 않기도 했다.

나을 듯 낫지 않고 계속 날 괴롭혔던 감기로 인해 여행은 더 할 수가 없었다.

가기 전에 확인한 파리 날씨는  도착하고 2일 정도만 비가 오고 나머지 6일은 맑은 날씨였는데 막상 가니 날씨가 수시로 바뀌었고 계속 비가 왔다.


 다음 나는  딸이 약국에서 사다준 감기약을 먹고  하루종일 호텔에서 잠을 잤다.

다행히 컨디션이 괜찮았던 딸은  샹젤리제 거리에서 친구들 선물도 사고  낮 시간의 에펠탑을 보고 싶다며 혼자 잠깐 나갔다 왔다.

씩씩하게 혼자 여행하는 딸이 대견했고 한편으론 또 미안하기도 했다.

딸이 오랫동안 기대했던 시간인데 내게 온 반갑지 않은 감기라는 손님까지 달고 오는 바람에   망쳐버린 거 같아 약간은 속상하기도 했다.


다음날  아직 호텔에서의 2박이  남아 있었지만 우린 가능하다면  비행기 스케줄을 바꾸어 일찍 돌아가기로 했다.

 다행히 평일이어서인지  어려움 없이 예약을 바꿀 수 있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차질이 생겼다.


경유하는 런던 공항에 도착해서 다음비행기를 기다리는데 계속 게이트번호가 뜨지 않았다.

 다음 비행시간까지 2시간의 여유시간이 있었지만 게이트 번호가 늦게 알려졌고 버스를 기다리느라 시간이 많이 가서 혹여 비행기를 놓칠까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보딩타임 전에 터미널에 도착했고 게이트 앞까지 잘 찾아서 뛰어갔다. 그런데.... 게이트 앞에서 표를 보여주었더니 이미 보딩시간이 마감되고 끝났다고 했다. 황당했다.

비행기표에 나온 시간으로는 겨우 도착하긴 했지만  아직 보딩이 끝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출발시간까지 50여분이 넘게 남아있었으니 말이다.  

우리만 그런 건 아니었고 우리 뒤에 온 팀도 몇 팀이나 있었고 그중엔 미국에서 유명한 유튜버도 있다고 딸이 알려주었다. 

다들 우리처럼 황당해하는 표정이었다.

결국 우리는 항공사의 안내를 따라 강제로 런던에서 1박을 하게 되었다.

그날 하루만 해도 여러 대의 비행기가 지연되어서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호텔이 남은 게 없다며  원하는 호텔을 잡아서  1박 하고. 그동안 사용한 경비는 청구하면 주겠다고 하며 영수증 다 보관하라는 안내를 해주었다.

액체류의 짐을 다 맡긴 상태라 할 수없이 세면도구 몇 개와 저녁에 먹을 간식을 사서 공항에서 4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호텔로 갔다.

정말로  공항 근처 호텔은 방이 하나도 없었다.

나중에 보니 딸이 예약한 호텔은 런던에 있는 웸블리스타디움  바로 앞에 있는 호텔이었다.


딸이 파리로 올 때 영국을 잠깐 경유하며 영국에도 며칠 머물면 좋겠다며 아쉬워했었는데 뜻밖에도 돌아가는 길에  영국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며 어이없는 이 상황을 기분 좋은 보너스로 생각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