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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미곰미 Apr 19. 2024

딸과 단둘이 떠난 해외여행 (후기 )

딸의 독립은 나도 준비가 필요하기에...

여행에서 돌아온 후 딸은 이사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젠 진짜 성인으로서 독립을 하려나보다.

예전에는  결혼을 해야 독립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직장을 구하고 집을 나가려는 딸을 보니 맘이 싱숭생숭하다.


난 늘 그 시간을 잘 준비하려 했고 지금도 그럴 수 있다면 잘하고 싶다.

사실은 생각만큼  잘 해낼 자신이 없기도 하다. 

혼자 차를 운전하며 가다가도 딸을 생각하면 울컥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분화'는 꼭 해야 하는 과제이기에  내 딸이 아닌 성숙한 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딸의 선택을 존중하려 한다.

주변에 있는  한국 엄마들 중에도 이걸 잘하지 못해서 나중까지도 자녀들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대하다 보니 결국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었다.

알고 있다. 그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음을... ...




파리 여행을 하는 동안 내가 아픈 상태이기도 했지만 여러 가지 언어적, 문화적인 요소로 인해서도 난 딸의 케어를 받는 입장이었다. 지금까지의 여행은 대체적으로 내가 주도하고 딸이 따라주는 행태였다면 이번 여행은 반대인 셈이었다.  딸이 계획하고 진행하는 여행이었다.

그 상황이 낯설기도 하고 중간중간 어색한 듯  묘한 기분이 느껴지기도 했다.  

언젠가 읽은  댓글에서 어떤 젊은이가  말했다. '전에는 당신들의 세상에 우리가 살았지만 이젠 우리의 세상에 당신들이 살고 있는 거예요.'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의 문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때문에도 이 말에 가슴이 쿵하는 느낌과 함께 고개가 끄덕여졌는데  이 여행에서 난 그런 느낌이었다.

그 어색함과 함께 서운함이 들어왔다.

여러 가지 옵션을 나열하며 선택하라는 딸의 말에 어떤 선택을 해야 좋을지 몰라 난감해졌다.  

좀처럼 자기 생각을 잘 말하지 않는 딸의 마음도 살펴야했기 때문이었다.

딸은 딸대로 엄마가 뭘 좋아할지 모르니 여러 가지 옵션을 나열할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나는 딸을, 딸은 나를 배려하느라 서로 자기 좋은 것을 말하지 않았 때문이었다.

선택 장애와 함께 계속 딸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상황으로 짜증이 난 나는 결국 딸에게 한 소릴 했다.

" 왜  니맘은 얘기 안하고  엄마한테만 선택을 미루는거야?

난 이제 너한테 아무 기대도 안 할 거야.

널 손님처럼 대할 거야"라고...

엥? 이 무슨 생뚱맞은 소린가? 

말을 하고 나도 아차 싶었다.

딸이 부담스러워하지 않도록 지나친 기대를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아쉬운 맘을 다독거리며 했던 생각들이  저 말이되어 튀어나왔던 거였다.

황당해하는 딸의 표정도 보았다.

"무슨 말이야 ? 난 뭐 참고 있는 게 없는 줄 알아? 엄만 왜 그렇게 가슴에 콕콕 박히는 말만해 "라고

그 말에 속상해진 난 뭘 참고 있는지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하고 "그래 , 그렇겠지..." 하곤 이불 뒤집어쓰고 누워버렸고 딸은 침묵으로 시간을 보낸 뒤 혼자 외출을 하고 왔다.


나는 딸을 위해 간 여행이라 생각하고 딸이 신나서 하는 걸 보고 싶었던 거였고,  딸은 엄마가 좋아하는 걸 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여러 가지 옵션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시큰둥해하는 거 같아서 속상했다고 했다.  

내가 시큰둥했던 건 딸은 무조건 내 선택을 따라 줄텐데 딸이 하고 싶은 건 뭘까를 고민해야 해서였다.

나중에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는  이것에 대해 서로  얘기를 하고 웃으며 맘을 나누기도했다.




애착관계에 대한 강의를 하셨던 교수님은 '분화'한다는 건 마치 붙어있는 두 개의 심장을 뜯어내는 것과 같이 고통이 따르는 일이라고 비유하셨다.  

그 시간들이 힘들지 않으려면 어릴 때부터 아이를 자신의 소유가 아닌 별도의 객체로 잘 볼 수 있어야 한다고도 하셨다.

그러니 너무  올인하지 말고 다 해주려고 하지 말고 아이가 그저 자기 삶을 살아가도록, 그 방법을 찾아가는걸 옆에서 지켜봐 주어야 한다고 했다. 성적이 좋다고 엄마가 기뻐할게 아니라 아이가 결과를  가지고 기뻐하면 '네가 기뻐하니 내가 기분이 좋구나' 하고 함께 해주고, 아이가 실망하면 '네가 실망스러워하니 나도 안타깝구나'라고 하라고 하셨다.

아이가  초등학생 때  들었던 강의인데  안타깝게도 그땐 그렇게 잘하지 못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나의 욕심과 비교의식으로 딸의 맘을 상하게 할 때도 있었다.  

가령 욕심 없는 딸은 그 결과에 충분하다 생각하고  만족하는데 난 그러지 못했고 아무 생각 없던 아이를 도리어 기분 나쁘게 할 때가 있었다.

문제는 나의 욕심이었다.

그럼에도 배운 게 있으니 그렇게 한걸 알아차리게 되면 얼른 말을 고쳐하거나 사과를 하기도 하며 지금까지 왔다.



대학을 다닐 때는 기숙사 생활을 하느라 집을 떠나 있었지만 그때도 다행히 학교가 가까워 주말이면 함께 할 수 있었다.  

기숙사를 나왔을 땐 우리가  조금 먼 곳으로 이사를  한 후라 친구들과 함께 학교 근처 아파트생활을 했다. 그리고 졸업할 때쯤엔  진로를  고민 중인 상태라  일단 집으로 왔고, 가까운 곳에서  전공과 연계된  간호대학 공부를 했던 거였다.


미국도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18살 이후엔 대학을 가거나 직장을 따라   독립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던 세태에서 벗어나 이처럼 필요를 따라 부모님과 함께 하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

일명 캥거루족인 셈인데 같은 시기에 대학을 졸업한 절친 네 명이 타주에서 다들 각자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린 집집마다 홈리스가 한 명씩 들어왔다고 놀리기도 했다.

딸의 친구들도 직장을 가지거나 대학원공부를 하면서 캥거루족의 형태를 보이는데 그도 그럴 것이 캘리포니아의 사악한 렌트비는 웬만해서 아이들이 감당하기에 버겁다.

물론 여전히 18세 이후엔 집에서 독립하라고 하고 한 푼도 보태주지 않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부모도 많이 보았다.

아무튼 딸 가진 입장에선 아무리 미국문화가 그렇다지만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더 곁에 두고 싶은 욕심이 있다.

난 맨날 쿨한척하지만 여전히 어렵기만하다.

 




요즘 직장생활을 시작한 딸은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병원으로 출근하느라 새벽 5시 전에 일어나 5시 30분이면 집을 나선다. 7시부터 근무지만 환자상태에 대한 인수인계를 해야 하기에 6시 30분까지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새벽에도 트래픽이 있다며 일찍 집을 나선다. 그리고 12시간 근무를 하고 집에 오면 8시가 넘는다.

집에 들어올 때면 생기가 없다. 아직 적응하느라 힘들어 그러겠지만 밥 먹을 힘조차 없어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도 힘겨워한다. 안쓰럽다.

아무래도 멀지 않은 시간에 병원 근처 아파트로 독립을 할 거 같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숭생숭한 맘 사이로 섭섭한 맘도 불쑥 찾아온다.

갱년기가 시작되면서 이것저것 신경 쓰는 게 귀찮아지기도 하고 파리로 떠나는 날 찾아온 감기는 초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탓에 한 달 하고도 보름이 넘는 시간까지 날 괴롭혔다.

그래도 마지막일 거 같은 맘으로 딸이 퇴근할 때면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저녁을 준비하려 한다.


가끔 맘이 싱숭생숭해지고 섭섭함이 몰려오거나  울컥해질 때면  김 남조 시인의 ' 너를 위하여'라는 시의 한 구절을  되뇐다.

' 이미 준 사랑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


딸과 나의 건강한 애착관계와 분화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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