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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미곰미 Aug 31. 2023

할머니의 주식

입 짧은 라라 할머니

할머니의 주식은 누룽지다.


팔이 부러지시면서 통증으로 인해 독한 약을 드시니 입이 쓰고 도무지 입맛이 없다고 하신다.

냉장고 속에는 사둔지 한참이 지난 뜯지도 않은 밑반찬들과 새롭게 해 드린 반찬들이 드시지도 않고 그대로 있다.


식사를 거의 못하시니 반찬이 그대로다.

드시고 싶은 음식이나 반찬을 얘기하시면 그때 그때 해드리는데 그나마 그럴 땐 입맛이 도셔서 조금씩 맛있게 드시기도 하신다.


밥을 해두면 거의 드시지를 않으셔서 찬밥으로 누룽지를 만들어드렸더니 그걸 맛있게 드셨다. 그럴 때면 할머니의 작고 동그란 배는 더 볼록해져서 마치 배부르게 먹고 난 아가들 배 같다.

그 동그란 배를 한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씀하신다.

"영 입이 쓰고 도통 입맛이 없는데 네가 만든 이 누룽지덕에 내가 버틴다"라고.......


해서 내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올 때마다 밥으로 누룽지를 만드는 거다. 팬에 동그랗게 밥을 펴서 노릇하게 구운 걸  한김 식혀 잘게 쪼개서 팩에  담아 놓는다.

 내가 오지 않는 날엔 그걸 끓여서 요기를 하신다.

 내가 오는 날에도  새 밥을 해 드리지만  그걸  누룽지로 만들어 달라고 하신다.


미국에서 근 30년을 사셨지만 그 입맛은 변함이 없고 특히 이렇게 몸이 안 좋을 땐  더 더욱 익숙한 고향의 맛이 그리워지는 때문일 것이다.


어느 날 인가엔   맛있는 된장국을 끓여 보고 싶다고 하시며 옆에서 얘기해 줄 테니 그대로 끓여보라고 했다.

어른을 모시고 산적이 없고 어른들로부터 뭔가를 배운 적이 별로 없는지라 난 그런 게 오히려 좋았다.

이참에 좀 더 다양한 요리를 배우거나 음식의 맛을 배가시켜 줄 요리팁을 배울 수 있을 거란 기대감도 생겼고, 이렇게 하면 할머니의 입맛에 맞춰드리기가 훨씬 쉬워질 거니 내겐 여러모로 득이 되는 셈이다


뚝배기를 꺼내서 물 조금 부어 냉동실 한쪽 구석에 있는 청국장 반덩어리를 넣고 된장 크게 한 스푼  함께 섞어서 양파와 감자를 잘게 잘라 섞었다.

암에 좋은 버섯과 파를 잔뜩 넣고 마지막으로 두부를 잘게 잘라 넣었더니 뚝배기 하나 가득 찌개로 채워졌다.

 보글보글 끓는 찌개 맛을 보시더니 여봐라는 듯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먹어보라셨다.


 그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찌개는 정말 맛있었다.

근데... 그러곤 드시지를 않으시고 입맛이 없어서 다 못 먹는다고 조그만 통에 한국자 덜어놓고는   괜찮다는 내손에 기어코 들려 보내셨다.

마침 남편 출장가고 없으니 밥하기 싫은맘까지 챙겨주신거다.

물론 그날 저녁에 딸이랑 아주 맛있게  먹었다.




손이 다치시기 전에는  독한 약을 드시지 않아도 되었을 테고 입맛이 지금처럼 없진 않으셔서  음식도 직접하시고 거기다 음식 솜씨가 꽤 좋으셨던 거 같다.


그럼에도 내가 만들어드리는 음식을 많이 드시진 못하지만 맛있다고 해주시고 고맙다 해주시니 감사하고 다행이다.


하니 내가  손은 다쳐서 이러고 있을지언정  음식 솜씨가 없는 건 아니니 대충 할 생각은 마라는 경고성 멘트로 내게 보여주신 건 아닌 듯하다. 새침하니 조금 까칠해 보이셔도 이럴 땐 꼭 친정 엄마 같으시다.  실제로도 친정엄마랑은 두살 정도 차이가 나신다.


해서 오늘 저녁에도 유튜브 여기저기를 찾아본다.

검색할 땐 요리 이름 앞에 꼭 ' 맛있게'를 넣어서 찾아보게 된다.


 어떤 걸 해드리면 입 짧은 라할머니께서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하고.....


 내가 해드린 음식을 맛있게 드시고 난 후에 할머니의 동그란 배가 아기 배처럼 더 볼록해지는 귀여운 모습을  자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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