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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미곰미 Sep 04. 2023

할머니께서 쓰러지셨다!!

어른이 되면서 담대해져야 할 순간들


저녁때쯤에 메시지가 떴다!!


할머니가 지금 쓰러지시면서  

머리를 다치셨는데  병원에 실려가고 있다고....

헉!!! 이를 어째....

어째 낮에 컨디션이 너무 안 좋으시더니 기어코 이런 사달이 나다니....




아침에 방문했을 땐 평소와 달리 문도 잠겨져 있고 전화를 드려도 한참 후에 나오셨다.

잠에 취해 계시는 모습으로 눈도 제대로 못 뜨시고 걸음걸이도  휘청휘청 중심을 못 잡고 영 불안했다.


'내가 왜 이러냐? 정신없이 자꾸 잠만 잔다'

그러시곤 다시 침대로 가 누우셨다.

식사는 하셨는지 커피는 드셨는지 여쭈어봐도 만사가 다 귀찮으신 듯 별 대답이 없으시다.

금세 잠이 드시는 것처럼 숨결이 아기처럼  새록새록 해지셨다.


조용히 키친으로 가서 식기세척기 속에 씻어두었던 냄비들을 정리하고  

싱크에 담겨있던 설거지 거리들을 정리했다.

설거지리라 해봤자 워낙 드시는 게 없고

어쩌다 냄비채로 누룽지를 드신 건지 그릇도 없이 누룽지 끓인 냄비에 숟가락하나

그리고 커피 드신 컵 한두 개가 전부일 때가 대부분이다.

그게 이틀 치 설거지거리인 셈이다.


드시는 것도 별로 없이 독한 진통제를 드시니 저리 몸이 못 견디시는 거 같다.

 

그렇게 오전 내내 잠만 주무시던 할머니는 점심때쯤 깨셔서 내일은  친구가 멀리서 온다고

좋아하시는 멸치 볶음과 냉동실에 남아있을 갈치를 찾아서 갈치조림을 해달라고 하셨다.

친구가 와서 두 분이 함께 맛있게 드시길 바라며 최선을 다해 맛있게 조림도 하고

비린맛이 나지 않도록  멸치도 두 번 볶아서 고소한 맛이 진하도록해두었다.


며칠 전에는 같이 마트에 가는 길에  좋아하는 한국 소품 가게에 들르셔서

당신이 시원하다고 자주 입으시는 것과 똑같은 원피스를 2개나 더 사셨다.

그중 하나를 친구 주신다고 작은 선물 가방에 담아 소파 위에 곱게 두셨는데....


헌데 그 친구를 만나지도 못하고  병원에 입원을 하신 거다.


따님은 1시간 거리에 살고 있으니 그 시간에 바로 오긴 힘들테고

혼자 계신가 하여 걱정도 되고 해서 내가 지금 가보겠다고 했더니

아니라고 지금 동생이 병원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내일 아침에 병원으로 와줄 수 있냐고 해서 그러겠다고 했다.




사실... 다치신 곳이 어떨지 걱정도 되지만

너무 약물에 의존하시는 게 아닌가 싶기고...

그렇다고 아파서 드신다는 약을 못 드시게 막을 재간도 근거도 없고....

이런 경우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없다.



혹시라도 이렇게 반복되다가  잘못되시기라도 할까 살짝 무섭기도 하다.

사실 이일을 하며 가장 걱정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처음에 라라 할머니를 만나기 전에 연세가 훨씬 많으신 어른을 소개받았을 때도

처음 든 생각이 그랬다. 만약 잘 못 되시기라도 하시면 어쩌지... 하고

그분은 결국 거리가 너무 멀다는 이유로 뵙지 못했지만 내 안에 이런 불안한 마음이 든 건 사실이었다.


나이만 중년이 되는 게 아닌 그런 일에도 담대하게

때론 담담하게 감당해 내는 진짜 어른이 되어 가고 싶은데...


허긴... 난 지금껏  큰일을 직접 치러 본 적이 없다.

시아버님 돌아가셨을 땐 미국에서 소식 듣고 다음날 바로 비행기 타고 가니

이미 장례절차 진행 중이었고 남편이 막내라 그런 건지 알아서 하시는 형님옆에서 자리만 지키면 됐었다.

시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땐 코로나 기간 중이라 그나마 가 보지도 못했다.

그때 남편은 한국 출장 중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위독하신 어머님을 마지막으로 뵙고

미국으로 돌아 려했다.

미국으로 돌아가려는 아들이 한 번 더 마지막으로 보고 싶으셨든지  

어머님은 비행기가 출발하는 날 새벽에 돌아가셨고

평소 사랑했던 막내아들의  마지막 배웅을 받으시며 떠나셨다.

멀리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막내인 남편의 서열상의  이유로도

난 어른으로서 감당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한 듯하다. 아니 그럴 일이 없었다.

사실은 솔직히 그런 일이 뭔지도 잘 모르겠다.


만에 하나... 그런 상황에라도 맞닥뜨리게 되다면 난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어른인 걸까?

담대하게  때론 담담하게 큰일도 치러낼 수 있는......

갑자기 어른의 사전적 의미가 궁금해졌다.

위키백과에 성인. 대인.  어른은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고 정의되어있다.

뭔가 좀 아쉽다는 느낌이 드는 건 내가 가진 어른에 대한 기대치가 있기 때문인 거 같다.

처음 브런치를 접하게 된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을 때가 기억난다.

어떤 부부가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옆에 테이블에서 중학생쯤의 남자아이들 10여 명이 고기를 먹는 걸 보고

부족해 보여 10인분을 더 사주었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그때 내가 답글을 남겼다

'좋은 어른으로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그렇다. 나에게 적어도 어른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어른이지 하는 기대가 있는 것이다.

앞만 보고 달리고 내 것만 챙기는 그것이 자기 책임을 다한 모습이라 여기며 살기보다

주위도 둘러보고 필요가 보이는 대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기꺼이 베풀 줄 아는...

때론 손해 보는 삶에도 허허로이 웃으며 보내주고 속아주는...

그리고 큰일 앞에서도 사사로이 또는 크게 감정의 동요 없이 담대한 사람...


그런 삶을 살아가는 어른들을 보며 그 행복함을 더 많이 누리고 싶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 그런 어른이 되어주는 삶이고 싶은데...

이렇게 적고 보니 아직 먼 듯하다.

할머니가 쓰러지셨다는 문자만으로도 이리 심장이 벌렁거리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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