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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미곰미 Sep 08. 2023

인생숙제 한 part...

거저 살다시피 한 내 삶이라....?


어머나 세상에!!! 이걸 어째.....

할머니 얼굴은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해서 깜짝 놀랐다.


아침 일찍 할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오늘 퇴원할 거니 집에 들러서 입을 옷을 찾아오라고 하셨다.

이놈들이 내 속옷까지 다 찢어 놓았다고

팬티도 하나 찾아오고 품이 여유로운 옷으로 창피하지 않을 거로 찾아서 오라고 하셨다.

열쇠는 앞집 아주머니가 가지고 있으니 그 집에서 열쇠를 받으면 된다고 하셨다.


부랴부랴 준비해서 댁으로 가서는 열쇠 맡기신 집이 앞집 이층이라고 했으니

이쯤이겠구나 짐작해서 찾아갔다.

하지만 아무리 두드려도 두 집 다 반응이 없다.

그나마 한집은 사람은 있는 듯 클래식 음악소리가 크게 흘러나왔다.


사람은 있겠다 싶어 음악소리가 들리는 집에 크게 노크를 하니 한참 후에야 할아버지 한분이 나오셨다.

앞집 라라할머니를 아시는지 여쭤보니 아내가 없다고 전화를 해보겠다고 하시더니

이내 아내 되시는 분을 바꿔주셨다.

내가 누군지 할머니는 지금 어디 계신지 등 몇 가지 질문을 하시더니 그럼 맞다고 하시며

할아버지께 열쇠를 찾아주라고 하셨다.


열쇠를 받아 아파트로 와보니

문이 잠겨있고 문 앞 쪽지에  할머니께 쓴 듯한 쪽지가 붙어져 있었다.

아마도 할머니께서  넘어지셔서 911에 의해 급하게 병원에 실려가신 후

평소 가까이 지내시던 이웃분께서 뒷 단속을 해주시고 붙여 놓으신 것인 듯했다.

열려있던 아파트 문을 잠근  후  열쇠를 보관하고 있으니 찾아가시란 거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말씀하신 대로 옷가지 몇 개와 속옷을  챙겼다.

작은 거실  한쪽으로 부엌이 딸려있고 그 넓이만큼 안쪽으로 방하나 그 안에 화장실 하나가 전부인 공간에

아주 넓은 집에 있을 법한 쾌종시계 소리가 퍼지니 왠지 으스스했다.

혼자 계실 때 이러셨겠구나..... 이 공간이 그리 편하시지만은 않으셨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얼른 문을 잠그고 병원으로 향했다. 거리가 꽤 멀어서 30분은 족히 고속도로를 달려서 갔다.




저녁에 잠깐 산책이 하고 싶어 집앞에 나갔다가 벤치에 잠시 앉았다 일어나는데

그냥 그대로 넘어지시면서 얼굴이 바닥에 부딪혀 이마가 터져서 두 바늘을 꿰매셨다고 했다.

이마뿐만 아니라 그 밑 광대가 있는 곳이 바닥에 쓸렸는지 새까맣게 흉져있었고

심지어 입술과 코도 거뭇거뭇한 상처들로 그야말로 엉망이 되어있었다.

두 달 전에 다치신 후  얼마 전 깁스를 풀고 물리치료 중이었던 왼손은  더 큰 깁스로 고정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그 모습을 보시며 '울긴 왜 울어. 내가 죽었냐' 하신다

나도 이리 기가차고 속상한데  자녀분들은 오죽할까 싶으다.


친정할머니와 오랫동안 함께했고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우리 형제들을 키워주신 분이 할머니시라 난 할머니들을 특히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지금 이 일이 싫지 않고 그리 힘들단 생각이 안 든다.


가끔 할머니 생각이 날 때면 어릴 때 철없이 할머니께 군것이 창피하고 죄송스럽다.

엄마랑도 살갑게 살아보지 않았고 시어머니도  남편이 막내이고 멀리 떨어져 산다는 이유로  모셔 본 적이 없으니... 어쩌면 라라 할머니 말씀대로 그런 면에선 난 인생을 거저 산 건지도 모르겠다.

라 할머니나 우리 엄마는 결혼과 동시에 돌아가실 때까지 시어머니를 40-50년을 모시고사셨으니... 그래서 그런 내게 라라 할머님은  '넌 거저 살았구나....'라고 하신다


맞는 말씀이시다.

해서 난 이 일을 하는 게 마치 거저 살다시피 한 내 삶에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 듯해서 좋고

고령화시대에  필요한  손 하나 보태는 뿌듯함도 느껴져서 좋다.

게다가  한국에서도 한번 해본 적 없는  나라의 녹을 먹고사는 일을  미국에서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마치 다하지 못한 인생숙제를 중년이 된 지금에라도 하고 있는 듯하다.

아무도 내게 내준 적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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