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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미곰미 Sep 16. 2023

할머니가 퇴원하셨다(2)

할머니 소녀....

한 시간쯤 후에

저 왔어요  하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할머니는 아들의 도움을 받아 샤워를 마치시고 머리를 곱게 빗고 계셨다.

나를 보자 넌 어디 갔었냐며 왜 이제 오냐고 하시며 섭섭함이 묻어있는 얼굴로 쳐다보시는데 낯빛엔 아직 분이 다 안 풀린듯한 흔적이 역력하셨다.


편한 옷을 찾아서 입혀드리고 있는데 앞집 아주머니와 딸이 할머니께서 오신 걸 알고 잠시 들리셨다.


주일 전 쓰러지셨던 상황 후에 처음 보시는지 그때의 일들을 얘기하며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라며 얘기를 주고받으셨다.

그 틈에 아들이 나를 잠깐 보자고 하더니 연신 죄송하다고 엄마가 지금 정신이 없으시다고......


아까 수화기 너머로 이런저런 얘기 중에 혹여 내가 듣고 맘 상하지나 않았나 걱정이 되었나 보다. 그리고 계약된 시간도 아닌 시간에 이리 달려와준 것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도 담아 전했다.

아니라고 걱정 마시라고

난 할머니와 함께 자라서 이런 게 어색하지도 않고, 어르신들의 말씀이 그리 불편하지도 않다고 

그나저나 걱정되셔서 편하게 모시려다 저러시니 얼마나 난감하시냐고

오히려 위로의 말을 전하니 그제야 안심이 되는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그동안 독한약 드시고 입맛이 없다고 잘 안 드시다 보니 기력이 많이 약해지시면서 이번에 그리 쓰러지신 거 같다고......

그리고 아무래도 혼자 있으신 시간을 좀 불안해하시는 거 같다고 그동안 살펴드리며 느낀 점도 간단하지만 솔직히 전달해 드렸다.

그리고 당분간은  좀 더 신경 써서 살펴보겠단 얘기도 했다.

그렇게 아들도 안심시키고 보내드리고 할머니와 마주 앉았다






아직 화가 안 풀리셨는지 가끔 나오시는 욕쟁이할머니 캐릭터로 변신하셔서는

이놈 저놈하시며 섭섭한 마음을 쏟아내셨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큰 병원에서의 치료를 끝내고 거기서 요양병원을 추천해 줬는데 아무래도 집하고 너무 멀어서 집 가까운 곳으로 알아보고 갔노라고....

가기 싫었는데 하도 아들이 걱정스레 쓴소리를 하고 엄마는 지금 24시간 캐어가 필요하고 한 번만 더 쓰러지면 이젠 진짜 끝일지도 모른다고 으름장을 놓으니

할 수없이 포기하고 2주만이라도 가보자는 말에 그러겠다고 했다고....

도착해서 아들이 입소 수순을 밟고 있는 사이

 배가 출출해서 가져간 빵을 먹으려 했는데

어떤 치매 걸린 노랑머리 할머니가 와서는 그걸 빤히 쳐다보더니   할머니가 어색해서 살짝 피하려 했더니 머리를 잡아당기셨다고...

상황이 너무 순식간이라 놀라셨단다.


 가뜩이나 편치 않던 맘에 불을 지핀 샘이 되어 그때부터 나가겠다고 집으로 보내달라고....

곱게 얘기하면 안 보내 줄 거 같아서

안 보내주면 경찰에 신고할 거란 엄포도 놓고 나중엔  길에 드러눕겠다고 소리까지 치시며 거의 2시간을 난리가 났었다고......


할머니가 한참을 얘기하시는데

"아이고 또 장난꾸러기 할머니가 되셨네요 " 했더니 " 내가 그리 했으니 그나마 갸들이 집으로 어서 모시고 가라고 했지 안 그러면 나를 곱게 보내줬겠냐"며 웃으신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그러고도 한참을 욕쟁이 할머니와 장난꾸러기 할머니를 오가며 속에 담긴 분노를 쏟아 내셨다.


고생하셨다고...

집에 오셔서 좋으시냐고...

이리 목소리가 쩌렁쩌렁하신 거 보니 오히려 안심이 되고 좋다고.....

그리 말씀드리고는 "많이 놀라셨죠?" 하고 물어보니 그제야 작고 예쁜 할머니로 돌아가서는 고개를 끄덕끄덕하셨다.

그 모습에 또 마음이 울컥했다.

마치 그 모습이 내 눈엔 그냥 작고 여린 소녀로 보였다.



어릴 땐 어른들은 안 그런 줄 알았다.

어른은 어른의 맘만 있는 줄 알았다.

사실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나만 그런가??

나이가 50이 되고 중년이 되어도

내 안에 있는 스무 살 소녀와 마주 할 때가 많은데....  그럴 땐 '난 이 나이가 돼도 왜 이모양인지... '란 의문이 들기도 하고 '난 어른이 못 된 건가?'또 ' 언제쯤 너그럽고 초연한 어른다운 어른이 될 수 있을까?'란  생각도 했다.


근데... 이젠 조금 알 것도 같다.

아마  60이 되고  70이 되어이렇겠다란걸......

해서 난 할머니의 마음도 그러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 내가 만난 할머니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가슴 한가득 상처 입은 여린 소녀의 모습이었다.

그 소녀를 차마 혼자 두고 올 수가 없어서

 난 할머니의 침대밑에 철퍼덕 주저앉아

평소보다 더 큰 소리로 웃어주고 맞장구치며 오랫동안 그  얘기를 듣고 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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