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성 우울 증후군 2
낮에 잠시 밥을 먹고 왔을 뿐인데,
사람이 많지도 않았고 다들 편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런데.
집에 돌아오자 말 그대로 배터리가 방전 상태가 됐다.
휴대폰을 무음 상태로 해두고 소파에 앉아 책을 펼쳤지만 이내 접어 버리고 그냥 멍하니 기대앉아 반쯤의 수면 상태로 있기를 한참.
얼마가 지났을까 문득 눈을 뜨자 거실은 이미 짙은 어둠 속이다.
- 몇 시일까. 아이는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나.
시간을 확인하려 휴대폰을 집어 들자 마침 친한 동생에게 전화가 온다. 잠시 망설이다 전화를 받아 들었다. 나처럼 가을을 타는 것일까(나는 가을을 좀 많이 타고 있을 뿐, 계절성 우울 증후군임을 굳게 믿는다.) 감정이 쌓이고 밀려 힘든 사람들이 많은듯하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들어주는 일뿐.
1시간 반이 넘게 이어진 통화를 끝내고 다시 소파 위로 널브러진다. 잠시 그대로 있다 내 위로 내려 않는 어둠을 털어내고 거실에 빛을 욱여넣는다.
아이에게 전화를 해, 식사와 귀가 시간을 확인하고 휴대폰을 확인한다. 부재중 전화와 매너콜 그리고 카톡. 그대로 전화기를 내려놓는다.
오늘의 나는 여기까지만.
다음날.
이런저런 일들로 수면제와 우울증 약으로 눌러 놨던 감정이 터져 버렸다. 다소 엉뚱한 곳에 화를 터트려 버리고는 또 그렇게 엉망인 자신이 짜증이나 자책의 늪을 헤매다 다시 수면제에 의존해 잠이 들었다.
그리고 또 다음날.
그렇지 않아도 작디작은 눈이 퉁퉁 부어 눈이라곤 퇴화의 흔적처럼만 남아있다. 화장실 거울을 보니 그 모습이 웃겨 설핏 웃음이 난다.
-이렇게 라도 웃으니 좋네
그냥 귀찮은 것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왠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소파에 앉아 있으려니(나의 계절성 우울 증후군으로 인해 우리 집 소파가 바빠졌다, 곧 얘가 힘들어 우울해질지도 모르겠다) 휴대폰에 낯선 전화번호가 뜬다.
아이러니하게도 전화번호부에 저장이 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이 안심이 되어 전화를 받아 든다.
까마득해 그때의 내가 기억도 나지 않는 27살.
첫 아이를 임신해 배가 불룩하던 내가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게 안쓰러워 집 방향이 같아 그런다며 차를 태워 출퇴근시켜 주시고, 출장이 잦았던 남편이 없는 날이면 집으로 데려가 밥을 챙겨 먹여주시던 고마운 직장 상사였다.
그때의 나는 희미하지만, 그때의 그분과 사모님의 다정함은 선명히 떠오른다.
끊어질 듯 끊이지 않고 몇 년에 한 번씩 안부를 묻고 잊지도 않으시고 퇴직 후 기르신 자두며, 감을 한 번씩 보내주시곤 했는데, 이번 전화의 용건 또한 시골집 마당의 단감이 올해 유난히 많이 열렸다며 한 박스를 보내주마 하신다.
지난여름 폐암으로 수술을 하셨다는 근황은 마치 감기가 걸렸다 나았다는 듯 무심히 툭 던지시고는.
전화를 끊고는 왈칵 눈물이 났다.
어제의 눈물과는 염도가 다른.
-오늘은 눈이 사라져 아무것도 못하겠는걸
거의 사라진 눈과는 다르게 마음의 눈은 환해져, 끈적하게 나를 끌어내리던 무기력을 저 멀리 차 버리고 대충 집을 정리하고 외출 준비(갈 곳이라곤 유효기간이 다 되어가는 기프티콘을 써야 하는 스타벅스뿐이건만 화장까지 곱게 하고)를 했다.
또다시 울리는 전화
이번엔 전화번호부에 기록된 번호이다. 잠시 망설였지만, 이번엔 많이 친밀(?) 하지 않은 사이라는 사실이 전화를 받게 만든다.
-뭐해요. 근처 볼 일 있어 왔는데 밥이나 먹읍시다
원래도 잘 먹지 않는 점심밥이라 평소라면 당연히 거절했을 테고, 지금은 더욱이 거절했어야 마땅한데 나도 모르게 그러자 한다.
오래된 신도시와 새로운 신도시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아직 논밭이 남아있는, 원래 이 섬의 속살과 같은 곳의 한 허름한 백반집에서 두부찌개를 먹고(너무 맛있어, 꼭 술 마시러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신이 났다 : ) 밖을 나오니 가을 햇살이 찬란하다.
나를 데려다주려면 잠깐의 거리지만 돌아가야 하는데 배려와 부담 그 어디쯤의 마음과 유난히 오늘의 가을 햇살이 마음에 들어 걸어가겠노라 한다.
지인의 가게에 들러 갓 내린 향긋한 커피 한 잔을 받아 들고 나와 집으로 향한다.
길가에 핀 감국, 가을바람에 휘날리는 낙엽들.
그 순간만큼은 우울 따윈 잊힌다.
결국,
날 우울로 이끄는 것도 우울에서 끄집어내는 것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이 올 만큼의 일들은 아니었건만 내 우울의 많은 원인 중 하나는 사람이었다.
인정하고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던 오랜 친구의, 내가 싫어하는 부분을 보게 되는 일이 반복되며 친구에 대한 부당한 혐오(타인의 대한 가치판단의 자격이 없다는 명확한 사실과, 그리고 나는 뭐가 그리 다르다고)의 감정과 예전의 기억이 다시 살아나 부대끼다 종국에는 자기혐오의 늪으로 빠져들게 된 듯하다.
친밀하지 않았다면 괴롭지 않았을 관계.
그리고 오늘 나를 끄집어 내 준 건 상대적으로 친밀하지 않는 관계.
관계의 정답이란 수학이 아닌 논술의 영역이라 정해진 답은 없다.
하지만 가끔은 친밀한 관계가 무거울 수도 있다는 것,
가끔은 덜어내야 내가 짓눌리지 않는다는 것 정도가 지금 내가 써낼수 있는 답안이리라.
이 가을의 우울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시작되고 멈추고.
그리고,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