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

계절성 우울 증후군 3

by 하란

스타벅스에서 블론드 바닐라 더블 샷 마키아또를 주문한다.

흑당 시럽과 휘핑크림 그리고 초콜릿 드리즐을 ‘많이’ 추가해서

이름도 긴 데다 평소 주문할 일이 없는 메뉴라 버벅대며 주문을 하다 보니, 왠지 주문받는 직원의 얼굴에 짜증이 섞인 듯도 하고 뒷사람들의 눈치도 보여 진땀이 흐른다.

원래도 단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 데다가 입으로 들어온 음식은 거의 100%의 흡수율을 자랑하는 몸뚱이라 늘 다이어트 모드이다 보니, 카페 주문 메뉴는 겨울엔 따뜻한 여름엔 차가운 아메리카노로 고정이 되어있다.


우울이 찾아오고, 감정에 휘둘릴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변화는 식욕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눈곱이 끼어 눈이 잘 떠지지 않을 때도 밥에 김치 하나만 있어도 두 그릇은 클리어할 자신이 있을 정도로 식욕은 늘 함께해 온 친구이기에 식욕이 는다기보단 조절이 불가능해진다는 게 정확할 듯하다.

병원을 찾기 전 다소 스트레스가 과하고 우울의 조짐이 보일 때부터 평소 1일 1식(혹은 1일 1 음주)이었던 식생활을 남들 다하는 아침, 점심, 저녁을 먹은 것만으로도 체중은 꾸준히 늘고 있었는데(살은 참으로 정직하고 성실한 존재이다!) 병원을 찾게 되고 불안이 심해지며 매운 감칠맛의 최고봉이자 살찌는 데도 최고봉이 엽떡, 매운 걸 먹게 되면 스물스물 생각이 나는 고소한 치즈가 쭈욱 쭈욱 늘어나는 피자 그리고 흰쌀밥, 라면 등 일 년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 한 것들이 주식이 되자 당연하게도 체중은 급격한 증가를 보였다. 사실 이쯤 되면 다이어트가 하기 싫어 우울증을 불러들인 거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할 법도 하다.

하지만 먹을 땐 좋지만, 뒷감당의 어려움을 알기에 먹고 나면 다시 스트레스를 자가 생성해 우울의 먹이로 주고 그리고 한층 자라난 우울은 다시 식욕을 불러들이길 반복하는 중이다.

돈이나 좀 이렇게 쑥쑥 쉽게 늘어나면 좋으련만, 조물주는 심술쟁이인지 원하는 것은 어렵게 원하지 않는 것은 쉽게 오도록 세상을 세팅해 놓은 듯하다.


오랜 폭식의 반복, 나의 마음의 안정도와 체중은 정확이 반비례한다.

폭식의 역사(?)를 쭉 톺아보니, 체중이 급격히 늘어난 초등학교 4학년 때가 그 원점인 듯하다

초등학교 2학년까진 키가 채 120센티미터가 간당간당한 키에 18~19킬로그램 정도로 깡마르고 작은 아이였다. 3학년 때 키가 15센티미터쯤 컸을 때도 몸무게는 채 30킬로그램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대망의 4학년 여름에서 5학년 겨울까지 키는 지금의 키인 155로 내 기준에서 훌쩍 컸고 그 보다 체중은 3배는 더 훌쩍 늘었다.

- 아아, 여리여리함을 추구하는 나의 리즈시절은 초등학교 3학년 때로 끝난 것이다.



그리고 그 원점에서 ‘큰언니의 부재’란 원인을 찾아냈다.

5살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원래도 힘들었던 듯한데 더욱 힘들어진 집안 사정에 돌봄이란 있을 수 없었고 나보다 9살이 많은 착하고 게다가 이쁘기까지 한 큰언니의 존재는 그야말로 나에겐 가뭄의 단비같이 내려지던 한 줄기 애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다 내가 4학년이던 때 갓 성인이 된 언니의 가출, 그 부재가 폭식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단지 성장기의 식욕이었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나의 스트레스와 폭식의 공생은 오래도록 지속되었고 그 사이에서 스트레스-> 폭식-> 다이어트-> 스트레스-> 폭식의 고리도 지치지도 않는 계속되고 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전혀 별개로 서로를 인식하고 서로를 무시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밀접해 서로가 서로에게 어마 무시하게 공명하고 있음을 모르는 듯하다.

-똥꾸 빵꾸 같은 바보들.

마음의 허기는 채우기가 힘들다. 하지만 몸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강력한 허기이다. 그럴 때 몸은 그 허기를 자기의 것으로 착각한다. 몸의 허기는 채우기가 쉽다. 단 먹어도 먹어도 이상하게 채워지지 않는다.

-당연하지! 너의 허기가 아니니까!

이렇게 나를 분석적으로 바라보고 흑당 시럽과, 휘핑크림 그리고 초콜릿을 듬뿍 추가한 블론드 더블샷 마키아또를 마시며 나의 허기가 몸의 것이 아닌 마음의 것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이성적인 나이지만 마음의 허기는 좀처럼 채워지지 않고 몸의 허기로 잠시 잠깐을 때우라는 목소리는 흑당 시럽과 휘핑크림 그리고 초콜릿을 듬뿍 추가한 블론드 더블샷 마키아또처럼 달콤하다.


오늘 저녁은 짜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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