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어느 한구석, 의지하고 싶은

계절성 우울 증후군 4

by 하란

예약 확인 문자를 보니 벌써 병원에 다녀온 지 일주일이 되었다.

내가 우울하든 말든, 시간은 참 또박또박 흘러가는구나

외부적 자극, 주로 사람을 만나는 일을 줄이고, 해야 할 일은 최소한만(집안이 어딘지 모르게 어수선하다.)하고 먹고 싶은 건 그냥 먹고(하, 이건 잘한 짓인지 모르겠다) 나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조심조심 지냈더니, 감정의 늪에 푹 빠지지는 않고 가볍게 어푸어푸 정도 하며 지내온 듯하다.

참, 술도 줄였다. 술 때문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않지만 그놈의 알코올에 의한 전두엽 손상 얘기 듣기가 자존심이 상해서.

집안을 정리하고 반신욕을 하고 알코올에 의한 전두엽 손상 환자처럼 안 보이려 화장도 좀 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아침에 잠시 골프연습장을 다녀오고 갑자기 허기가 져서 아침을 먹고 잠시 소파에 앉았는데(밥 먹고 바로 눕는 걸 최고의 행복으로 여긴다) 훅 밀려오는 잠에 하릴없이 눈꺼풀이 내려앉고 말았다.

예약시간 30분을 남기고 겨우 잠을 떨쳐내고 병원을 향했다. 사실 우울증은 상담이 더 필요할 수도 있는데 상담을 심도 깊게 진행하는 병원을 찾긴 힘들다. 또 전문적인 상담소의 경우 찾기도 어렵고 전문성이 보장되지 않기에 도움을 받기엔 다소 힘들다.

어쨌든 지난번 전두엽 때문에 단단히 삐지기도 했고, 진료(상담이 아닌 진료라고 봐야 한다)를 받는 동안

- 아, 역시나

란 마음이 강했기에, 가서 지난 한 주간 나의 상태를 간단 명료히 브리핑하고 약만 빨리 받아오리라 다짐한다.

차례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간다.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첫 질문

-어떻게 지내셨나요?

-잠은 잘 자구요. 무기력이 좀 더 심해졌는지 나른하고 일상 루틴이 좀 안돼서 불편한 게 있어요.

사람들 만나는 게 좀 힘들고요. 만나서 나쁘지 않은데, 좋은 사람들인데도 그러네요.

-나쁜 일만 힘든 건 아니에요. 좋은 일도 하나의 인풋이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수가 있어요.

음 아침 약으로 처방해 드린 우울증 약은 각성효과가 좀 있어서 좀 활기가 생길 텐데 나른하시다고요?

-네, 저 요새 낮잠도 많이 자요(아침잠도) 밤잠을 잘 자는데도요.

-음 저녁에 처방한 수면 약은 좀 약한 성분인데, 성분이 약하면 효과가 좀 오래 지속이 되기도 해요. 그래서 나른함이 지속돼서 그런 걸 수도 있습니다. 강한 약은 효과가 강하지만 중독의 위험성이 있다는 점이 있고요.

그럼 저녁 약은 그대로 유지하고 아침 약을 좀 더 강한 걸로 바꿔볼게요. 이 주 정도 드셔 보시고 오세요

-‘괜찮아 보이나 보네. 끝인가? 나가야 하나? 나가란 소릴 안 하네.’

-우울증이 보통 내성적인 분들이 많이 걸린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책임감이 강하신 분들이 많이 걸리세요.

-아, 네...(음, 나의 삐짐을 눈치채고 달래주시는 건가?, 아님 너무 빨리 끝나서 그러나?)

-약이 안 맞거나 하시면 2주 전에라도 방문하세요

-네(갈 리가...)

약을 받기 위해 잠시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문득 밤낮을 가리지 않고 졸아대던 최근 며칠간은 수면제는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번뜩 떠오른다.

-아, 뭐지 수면제 때문이 아니라고 다시 얘길 해야 하나, 나 그럼 왜 병든 닭 새끼 마냥 내내 존 거야

-ㅇㅇㅇ님 약 나왔습니다.

-늦었다.

완전히 잘못된 처방을 받고, 하지만 큰 차이가 있겠나 싶어 스타벅스에 가서 글이나 좀 쓰다가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병원을 나서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머야...

-전두엽 의사 선생님에게라도 얘기를 하고 싶었나

-의지를 하고 싶었나... 힘들다고...

-나 힘들구나...

-이 놈의 눈물 꼭지는 완전 내 의지의 영역을 벗어났구먼

-마스크가 있어 그나마 눈에 덜 띄겠지, 다행이다.

-왜 갑자기 이 와중에 이 노래가 머릿속에 맴돌지

-아 병원 로비에서 흘러나오던 피아노곡이구나


따위의 생각을 하며 이어폰을 끼고 머릿속을 맴도는 ‘CITY OF STAR’를 재생시키고는 스타벅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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