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 아니 에르노

독후감

by 하란

이제 겨울인데, 가을의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책을 선물하고 싶다는 톡이 왔다.

이미 지난 것.

다른 선물이라면 망설임 없이 거절했을 텐데, 책이란 단어에서 잠시 망설이다, 이내 받아들인다.

“노력하긴 싫은데, 성공은 하고 싶어.”

란 책을 선물해줄까?라는 물음은 0.5초 만에 쳐내고,

-난 노력도 성공도 다 싫은 사람이니깐.

잠시 생각하다 누군가가 추천한 기억이 떠올라 아니 에르노(아니!! 에르노?!!!, 죄송...)의 단순한 열정을 요청한다.

아마도 그 누군가일 사람들에게 물으니,

- 제1순위의 누군가가 얘기했다.

“난 아닌 듯??”

“내 기억엔 넌데?”

“난 읽은 적 없어요~~”

“이래서, 기억은 믿으면 안 되는 것”

“맞지요”

- 다행히 2순위의 누군가는 맞았다


추진력이라면 레벨 원일 이의 선물은 다음날 나에게로 왔고.

두 페이지를 읽자 나는 단박에 이 작가가 좋아졌다.

- ‘올여름 나는 처음으로 텔레비전에서 포르노 영화를 보았다’ 시작하고

- ‘아마도 이번 글쓰기는 이런 정사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인상, 또는 고통, 당혹스러움, 그리고 도덕적 판단이 유보된 상태에 매달리게 될 것 같다’라고 끝나는.

그리고 다시 이 책을 읽기까지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 책을 다시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좀처럼 와주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아침 흩날리는 눈발에, 책을 다시 집어 들었고 한 페이지를 넘기자 나는 와인을 딸 수밖에 없었다.

- 혹시나 전두엽에 손상이 갈 정도로 알콜을 좋아하는 나는 단순히 술이 먹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딸이 먹다 남긴 베이글이 반쪽 남아 시간의 완성도를 더한다.

- 담백한 빵에 와인 마시기를 즐긴다, 몽마르트르의 가난한 예술가 놀이랄까

작가의 ‘단순한 열정’은 모든 문장, 아니 단어, 아니 글자까지도 나의 것인 듯 익숙했다.

다만, 이런 나의 단순한 열정의 대상은 무엇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사랑은 ‘사랑’을 위한 사랑.

나의 열정은 ‘열정’을 위한 열정.

나의 갈망은 ‘결핍’에 대한 갈망.

어느 한순간이라도 그 대단했던 열정에 ‘누군가’가 있었던가.

상대의 고백으로 시작됐던 대부분의 연애와 딱 한 번 나의 고백으로 시작됐던 연애까지도 나는 누가 보기에도 인정할 정도로 열정을 다했지만 진짜 그 사람을 사랑했었나라는 물음엔 조금만 생각해봐도 ‘아니’란 대답이 나온다.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사랑했지만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던 나.

이상하지만 그랬다.

왜 그랬을까?

-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

- 혹은 나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 아니, 애초에 타인을 사랑하는 열정이란 게 존재하긴 하나?

까지, 물음에 물음을 거듭하지만 ‘모르겠다.’

싸다만 똥 같은 찝찝한 글이 될 것임을 명확히 알지만,

그래도 모르겠는 건, 모르는 것.

어쩔 수 없다.

내가 아는 건, 그것 하나.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라는 작가의 마지막 글.

나에게 ‘누군가’에 대한 열정이라는 건, 이번 생엔 감히 누릴 수 없는 ‘사치’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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