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무슨 그리 대수로운 일이냐, 혹은 아직도 없었냐는 핀잔을 들을 법도 하지만 나름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내게 진공청소기도 아닌 로봇청소기라니 미니멀은커녕 맥시멈에 가깝지 않나 하는 일종의 자기 검열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20여 년 전 부산 다대포에 13평의 작고 낡은 아파트에서 첫 결혼 생활을 시작하곤, 누구나 그러듯 조금씩 대출을 받아가며 20평, 30평대로 착실히 넓혀 나가다 집 값이 그리 비싸기 않은 인천의 한 신도시에서 40평대 아파트로 첫 집 장만을 했다.
그리 넉넉히 자라지를 못해 쓰는 습관 자체가 어색해 딱히 절약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사치와는 거리가 멀었고, 당연하게 가구나 가전 등에도 큰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저 딱 남들 정도.
그러다 처음 생긴 내 집을 번듯하게 꾸미고 싶은 욕구가 생겼고 더블킹 침대며 8인용 소파, 시스템 옷장 그리고 처음 생긴 자기 방에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침대, 옷장, 책상도 갖출 대로 갖추었다. 가전도 물론.
그렇게 내 기준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일 풀소유의 삶을 채 일 년이나 살았을까, 어느 순간 집을 둘러보니 어린아이 둘과 맞벌이하는 부부의 집은 그저 크고 넓은 쓰레기장에 지나지 않았다.
그즈음 찾아온 우울증에 휴직을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 한달살이를 할 기회가 있었다.6평 원룸의 최소한의 가전, 가구만 있는 생활은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고 앉은자리에서 걸레를 잡고 빙 한 바퀴 돌면 청소가 끝나 정돈된 환경에서 살 수 있다니, 늘 치워도 치워도 어수선한 생활을 생각하면 마치 신세계를 알아버린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상의 끝에 속초로 거주를 옮기기로 하고 집을 줄여 가기로 했다. 10평 정도가 줄어들자 큰 집의 큰 가구는 모두 무용지물, 지금처럼 당근마켓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어찌어찌 사용하겠다는 사람에게 주고 남은 것은 돈을 들여 버리는 수밖에.
이후 속초에서 대전으로 옮기며 집은 다시 10평이 줄어 24평이 되었고, 이번엔 조금 큰 가전들도 모두 정리하고 최소한으로 짐을 줄였다.
기준은 없으면 안 되는가? 없어서 불편한 것이 아닌 없으면 생활이 안 되는 것만 소유하는 걸로.
줄어든 짐에 24평 집은 그 어느 때보다도 넓게 느껴졌고 그만큼 나의 만족도도 컸지만 가족들, 특히 아이들의 경우 에어컨, 텔레비전, 작은 냉장고에 대한 불평불만이 터져 나왔다.
어쨌든 어르고(?) 달래 가며 미니멀한 삶의 정점을 찍었던 시기이었고 다시 인천으로 이사를 할 땐 그마저도 좀 더 줄여 1톤 트럭을 빌려 자가 이사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후 가족들의 의견을 수렴해 집은 넓어져 32평 집에 살고 있고 냉장고는 좀 크게 바꿨지만(아이스크림을 보관할 수 없다는 불만이 가장 컸다!) 소파, 텔레비전, 에어컨, 침대 등 부피가 큰 가전 가구는 없고, 가능한 꼭 필요하지 않으면 살림살이를 늘리는 건 지양하고 있다.
그런데, 진공청소기도 아닌 로봇청소기를 샀으니 나름 큰 결심이었던 것이다.
이유는 라봉, 거봉, 따봉.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고양이 세 자매들 때문.
구구절절한 묘연으로 동거인이 된 세 마리가 뿜어대는 사막을 굴러다니는 텀블위드 같은 털들은 차지하고 화장실 모래로 인한 사막화가 가장 큰난제였다.
청소를 해도 해도 늘 까매지는 발바닥에 몇 년간 스트레스를 받다가 정신 건강을 위해 매일 아침 빗자루질과 일주일 2번의 물걸레질 그리고 슬리퍼를 신는 것(?)으로 타협을 하고 살고는 있지만 생활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가장 큰 요소였다.
그리하여 세일하는 로봇청소기를 본 순간, 삶의 가치관과 현실 사이에서의 갈등에 고심하며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주문 버튼을 누르게 된 것이다.
배송을 받고 전원을 켜자 주홍빛 띠를 곱게 두르시고 일단 집안 파악부터 하시곤 열심히 바닥을 쓸고 다니시는 여사님을 뵈니 내 결정이 옳았음에 안도한다.
-집 안을 휘젓고 다니는 여사님의 등장에 봉 자매님들도 신나신 듯하다.
매일의 빗질을 여사님의 청소 후 매일의 걸레질로 바꿀 수 있게 되니 노동의 절감과 더불어 드디어 하얀 발바닥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오늘도 신나게 집안을 휘저으시는 여사님 덕에 잠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리며 생각한다.
미니멀라이프도 결국은 내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 미니멀을 위한 미니멀이 아닌 내 삶을 위한 미니멀을 위해 가끔은 이런 합리적 타협도 필요하지 않을까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