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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Jun 28. 2024

작고 약한 이들에 대한 사랑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심장 추적 관찰 정기 검진이 있어 병원에 갔다가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병원에서 벌어진 누군가의 작은 사건(?)에 괜한 오지랖을 부린 결과다.    

 

80은 족히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내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늦게 온 사람들이 전부 진료 보고 나오는 상황에서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채셨나 보다.

할머니는 마침 지나가는 간호사에게 언제쯤 진료를 볼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간호사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할머니에게 소리를 지른다. “몇 번이나 불렀는지 아세요?”

간호사는 할머니의 팔을 잡아채서 등을 떠밀 듯 진료실 앞으로 앉혔다. 그 과정에서 할머니가 넘어졌다. 나는 그 장면을 목격하고 달려가서 할머니를 일으켜 세웠다. 간호사는 그 상황에서 사과 한마디 없이 할머니 탓을 했다. 나는 내가 겪었던 어떤 사건이 생각나 이건 아니다 싶어 간호사에게 얘기했다. 

“당신이 이 할머니에게 한 행동은 폭력이에요.”

내가 이렇게 타인이 겪은 일에 화가 났던 이유는 내 가족이 언젠가 당했던 일이 떠올라서였다.    

 

엄마가 입원 항암 치료를 받을 때 눈이 안 좋아지셔서 협진을 받기 위해 안과를 찾아갔었다.

안 검진을 위해 기구에 턱을 대라고 하는 데, 엄마는 힘이 없어 턱을 바짝 대지 못했다. 그러자 의사는 소리를 지르며 엄마의 얼굴을 자기 손으로 확 끌어당겨 기구에 밀착시켰다. 그러고는 왼쪽으로 눈을 돌려보라고 신경질적인 어조로 지시했다. 오랜 항암으로 기력이 쇠해진 엄마는 의사의 얘길 듣지 못했다. 그러자 의사가 “왼쪽으로 눈을 돌리라고요!” 하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이 상황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감지했지만 엄마를 생각해서 참고 있었다. 진료가 끝나고 엄마를 부축해 진료실을 나가는 데 의사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빨리 나가시라고요!”

이건 분명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항암 주사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노인에게 빨리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엄마는 그 상황에서도 의사에게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으셨다.     

나는 다른 환자를 위해서라도 이 상황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하고 진료실을 나오자마자 이 상황을 간호사에게 전달했다. 의사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감지했는데 보호자인 나를 찾았다. 

혼자 진료실로 들어가니 아까와 달리 온화한 말투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의사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 의사는 자기가 한 말과 행동이 선을 넘었다는 걸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 의사의 뻔한 변명을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 

“당신은 여기서 환자를 치료해야 할 게 아니라, 어디 가서 치료를 받는 게 좋을 것 같다"라는 말을 해주고 진료실을 나왔다.

그리고 병실로 올라가 수간호사와 고객 상담실에 내가 겪은 일을 알리고 더 이상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공론화시키겠다고 내 의사를 전달했다.     

30분쯤 지나서 수간호사가 찾아왔다.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냐고. 나는 의사가 직접 와서 엄마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수간호사는 의사가 환자에게 찾아와 사과를 하는 일은 없다고 단칼에 거절을 하고 돌아갔다.     

엄마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웬만해서는 참자고 생각했지만, 나는 최악의 경우에 병원을 옮길 상황까지 각오하고 이번 일에 대해서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 일 말고도 여러 차례 병원에서 겪은 부당함에 더 이상 참는 게 능사는 아니란 걸 알게 되었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서라도 이런 일들이 다른 환자에게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기자분에게 이 사건에 대해 제보했고, 몇 시간이 지나서 그가 취재를 위해 병원에 찾아왔다. 그제야 병원 관계자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했는지 의사와 얘기를 나눠본다고 나를 달래러 왔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그날 의사가 찾아와 엄마에게 사과했다. 뭐든 잘 참는 엄마가 그 의사에게 딱 한 마디를 하셨다.

“우리 아들도 의사지만, 환자한테 그런 식으로 하는 걸 보면 내가 아들 따위를 한 대 때렸을 거라고.” 엄마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부당한 상황을 당해도 내색 한번 없이 그 사람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으셨던 엄마가 그날은 얼마나 상처를 받으셨는지, 그 얘기에서 모든 게 느껴져 마음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그날의 사건은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인지 모르지만, 순식간에 병동에 퍼졌다. 물을 뜨러 복도에 나갔더니 여기저기서 보호자와 환자들이 다가와 고맙다고 했고, 어느 환자는 내게 말 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게 무슨 박수를 받을 일이고, 뭐가 고마운 일인지) 

그들은 그제야 나와 비슷한 일을 당했던 얘기를 하나둘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이 털어놓은 얘기들이 참 씁쓸하고 아프게 다가왔다. 

부당한 일을 겪어도 함부로 그 부당함을 드러내지 못하는, 철저히 약자로서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엄마가 떠난 지금.

나는 내가 어떤 사람, 그리고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수시로 질문을 던져본다.

약하고 힘든 사람들을 더 깊게 이해하고 바라봐야 하는 사람들이 무슨 권력이라도 지닌 듯 약한 이들 앞에서 펄펄 나는 모습을 목격할 때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를 더 선명하게 느끼게 된다.    

어쩌면 그게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인지 모르겠다.     

“부디 친절해라, 모든 사람들이 힘든 싸움을 치르고 있으니까.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영화 <원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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