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하든 그것을 결국 일과 관련을 지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처럼 그랬었다. 물론 그렇게 미쳐있던 시간이 있었기에 전문성을 갖출 수 있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샘솟을 것만 같고 존재할 것 같았던 열정과 에너지는 일순간 해가 지면 함께 사라지는 믿기지 않는 시간이 찾아왔다.
건강검진을 위해 찾은 병원에서 갑상선에 크고 작은 혹이 5개나 발견했고 복부에 도 1.3센티 이상으로 추정되는 혹도 발견된 것이다. 큰 병원을김 봐야 할 것 같다고 의사가 소견서를 써주었다. 바쁜 와중에 대학 병원을 가보라는 의사의 말에 ‘바쁜데 또 뭐야. 번거롭게.’ 짜증스러웠다. 회사에 복귀해 그것도 잊고 일에 집중했다. 잊고 있던 소견서가 떠 오른 것은 늦은 퇴근길에서였다. 그제야 이루고 싶었던 꿈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리고 그 생각 끝에 엄마를 의지하며 착하고 순하게 잘 자라주고 있는 아들의 얼굴이 스쳤다. 마음이 아팠다. 그제야 무엇을 위해 건강도 잃고 가족을 챙기지도 못하고 살았는지 스스로가 안타까워 코끝이 찡하고 고인 눈물로 시야가 서서히 흐려졌다.
앞만 보고 달렸다. 옆을 본다는 여유 같은 것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는 사치품과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한번 무너진 체력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MRI촬영을 위해 6개월마다 병원에 가야 했고 갑상선으로 장기간 복용해 온 약물의 부작용으로 한 여름에도 발 시림을 이기지 못하고 수면 양말을 신게 되었다. 몸이 망가지니 마음도 망가지고 힘든 시간이 반복되었다.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사랑하는 아들을 두고 죽을 수 있다는 불안감은 날마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어김없이 찾아왔다.
일단 나는 반복 해오던 철인적인 일정을 멈췄다. 첫 번째 업무시간을 줄였다. 두 번째 일요일은 무조건 쉬었다. 아니 자동으로 쉬어졌다. 세 번째 식단은 되도록 좋은 것으로 선택하려 노력하고 되도록 많이 먹었다. 네 번째 많이 자려고 노력했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된 것이다.
살기 위한 투쟁이었다. 그제야 서글프기도 했다. 나의 지진 몸의 상태를 정확히 알면 알수록 스스로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몸은 솔직해서 내가 나를 다룬 대로 보여준다고 했던 말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나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부터라도 소중히 다루고 아껴가며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은 녹녹치 않았다. 16시간의 업무시간을 줄여 놓으니 일에 대한 공백이 너무 크게 드러났고 리스크 발생 건도 늘었으며 신규 계약건은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일은 줄었으나 일정은 늘어지고 만족스럽지 않았다. 다시 마음이 조급해졌다. 생각처럼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처음은 그렇게 모든 것이 힘들었다. 순간순간 예전의 패턴으로 돌아가려는 나와 싸우는 시간이 필요했다. 머리는 복잡하고 마음은 무거웠다. 벗어나고 싶었다. 그때부터 새벽 산행은 시작됐다. 100일이 목표였다. 처음에는 떨어진 체력으로 힘들었지만 하루, 이틀, 열흘이 지날수록 조금씩 체력이 좋아졌다. 컨디션이 좋아지면서 고요함이 찾아왔다. 불안과 초조함이라는 부유물이 가라앉자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밖에서 회사 내부를 들여다보니 문제점과 해결점이 확연히 보였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시작된 산행이었으나 걷고 오르며 업무분장 개편과 사내 프로세스 개선에 대한 계획을 자연스럽게 세우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핵심 실천 계획 첫 번째는 ‘모두 다 내가 하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직원들에게 직책과 업무에 따라 권한과 책임을 적절히 분배했다. 두 번째는 '시간은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일을 여러 사람이 반복하는 구조로 된 시스템은 없는지 다시 한번 체크하고 최대한 단순화 시켰다.
이렇게 실천하는 과정에서 조직원들은 대표가 함께 감당해 준 책임에 대한 부담감으로 잠시 힘들어했다.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 당황하며 해결해 주길 바라는 책임 연구원에게 이야기했다. “최종의 책임은 어차피 내 몫이야. 부담 갖지 말고 우리가 함께 해오던 방식을 떠올리며 네 판단에 의해 네 스타일로 마무리하면 잘될 거야”라고 용기를 줬지만 선뜻 실행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그녀에게 나를 믿냐고 물었다.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답했다."이미 책임 연구원은 내가 선택한 사람이야. 네가 너 스스로를 믿을 수 없다면 내가 믿는 너를 믿어주면 안 되겠니?”라고이야기하자 의지를 보이기 시작했다.
문제가 발생하게 된 요인에 대해 설명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면 좋을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렇게 스스로 전면에서 처리하도록 반복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책임자는 성취감에 자신감이도 생기고 스스로 능동적으로 일 처리를 하게 있다.
대표만 연설하느라 길어지는 회의 시간을 줄였고 같은 사항을 반복적으로 챙기는 일을 줄였으며 보고의 시스템도 최소화시켰다. 리스크를 줄인다는 명목하에 몇 차례 확인하는 장치를 걸러 낸 것이다. 불필요한 시간이 줄어 들으니 업무의 효율은 증대되고 업무를 가볍고 보다 즐겁게 대하는 시간이 늘었다. 그뿐만 아니라 능동적으로 처리 해내는 능력 있는 인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100일의 노력으로 체력도 많이 좋아졌을 뿐 마음도 단단해졌다. 잠시 멈추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니 회사의 고민도 하나둘씩 해결이 되었고 보다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성장을 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때가 돼도스스로 깨치지 못하는 나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병이라는 이름으로 붙잡아둔 것은 아닐까? 스스로 그 답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을 놓치지 않으면 성장한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