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고향에 계시던 아버지가 서울로 올라오셨다.
광명에 보고싶은 공연이 있으셔서 올라오셨고 우리집에 하룻밤 묵어도 되냐고 물으셨다.
아버지가 광명시청에서 저녁 9시에 공연이 끝나는데 우리집으로 오는 교통편이 애매해서 데리러 올 수 있냐고 물으셨다.
나는 금요일에 퇴근하고 두통이 있어서 귀찮고 짜증이 났지만 참고 알겠다고 했다. 아버지가 내가 고향내려갈때마다 기차역, 공항, 버스터미널로 태우러 온게 생각이 났고 짜증내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밤에 드라이브겸 아버지를 데리러 가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시간 맞춰서 아버지를 데리러 갔다.
광명시청에 데리러 가니 아버지가 뒤에 남은 공연이 하나 더 있는데 그걸 혹시 보고가도 되냐고 물어봤다. 나는 짜증이 났고 그럴꺼면 그 공연 끝나는 시간에 부르지 왜 일찍 불렀냐고 짜증섞인 한마디를 뱉었다. 아버지는 약간 미안해하며 뒤에 남은 공연이 갑자기 더 보고 싶어졌다며 하나만 더 보고가자고 하셨다. 나는 길지도 않고 30분정도 더 있다가 가는건데 짜증을 낸게 미안했고 알겠다고 말하고 주차를 한 뒤 아버지랑 공연을 봤다.
공연을 보고 아버지와 함께 집에 와서 치킨과 맥주 한캔 씩을 마신 뒤 잠들었다. 맥주를 한캔 마셔서 그런지 자고 일어나도 약간 피곤했다. 피곤하니 괜시리 짜증이 났고 내가 피곤한 걸 아빠 탓으로 돌렸다. 아빠가 괜히 어제 맥주를 마시자고 해서 내가 아침에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상 내가 마시고 싶어서 마신것이었지만 컨디션이 다운되고 짜증이 나니 아빠 탓으로 돌린 것이다. 그래서 대놓고 아빠 탓이라고는 말 안했지만 '아 어제 괜히 맥주 마셨다'라고 말하며 은근히 아빠 때문에 맥주를 마셨고 그것때문에 피곤한거라고 탓을 했다.
나는 왜이렇게 아빠에게 짜증을 내는걸까. 심한 짜증은 아니지만 짧은 기간동안 조그만한 짜증을 낸게 아빠에게 미안하고 스스로도 속상하다. 내가 좀 여유가 있으면 아빠를 위해 시간을 빼도 짜증이 안날텐데. 하기 싫은 일을 하며 회사에 다니니 조금만 내 생활이 틀어져도 짜증이 난다. 내게 온전한 휴식시간은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밖에 없는데 이 시간이 내 생각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짜증이 나는 것이다. 아버지가 집에 오면 당연히 조금은 불편하다. 내 방을 아버지에게 내주고 나는 2층에 가서 자야되고, 아버지 일정과 내 일정을 조율해서 저녁도 먹고 아침도 먹어야된다. 근데 그게 크게 불편한 것도 아니고 기간도 길지않다. 이번에는 단지 1박2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중간중간 짜증을 냈다. 그 조금의 불편도 감수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언젠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나는 나도 모르게 냈던 짜증들을 다 후회할 것 같다. 대단한 효자는 아니더라도 내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을 못해준 것에 대해 후회할 것 같다. 그럴려면 지금부터 잘해야된다. 잘하려면, 최소한 못하진 않으려면 내가 기뻐야된다. 내가 슬프고 예민한 상태에서는 타자에게 잘할 수 없다. 타자에게 배려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타자에게 배려를 하려면 여러가지가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에너지가 있어야한다.
배려라는 것은 타자의 상태와 원하는 것을 읽고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타자를 위해 양보하는 것이다. 내가 불편한 것을 감수하려면 에너지가 있어야한다. 그럴 에너지, 여유가 없다면 사랑하는 타자라고 하더라도 배려를 할 수가 없다. 물론 사랑이 크면 내 에너지가 없더라도 어느정도 배려를 할 수 있겠지만.
별것 아닌 것도 짜증을 내서 아빠에게 미안한다. 다음부터는 이런 실수를 안하기 위해서 내 삶을 더 기쁘게, 좀 더 여유롭게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럴 방법이 뭐가 있는지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