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기억 중에 특별히 기억 남는 순간이 있다.
그녀와 떠난 마지막 여행이었다. 우리는 경주로 떠났고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좋은 날에 떠난 여행이었다.
서울에서 떠난 경주는 꽤 멀었다. 기차로 꼬박 2시간반정도 걸렸던 것 같다.
첫날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우리는 비가 안 올때는 왕릉을 구경했고 비가 올때는 식당으로 몸을 피해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저녁에는 그녀 사준 맛있는 소고기와 시원한 맥주를 한잔했고 야장을 구경했다.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여행 둘쨋 날에 나의 제안으로 우리는 스쿠터를 빌려서 탔다. 그녀와 나는 둘 다 스쿠터를 처음 타는 것이었다. 나는 스쿠터의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었다. 예전부터 스쿠터를 타보고 싶었고 스쿠터를 타고 달리면서 맞는 바람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녀는 그 제안을 선뜻 수락해줬다. 우리는 각자 스쿠터를 끌고 교육을 조금 받은 다음에 보문단지로 향했다. 처음 타는 스쿠터는 다소 무서웠다. 차 안에 있을때는 몰랐는데 차 밖에서 스쿠터로 도로를 달리는 건 다른 느낌이었다. 안락한 방에서 나와서 홀홀단신으로 도로를 달리는 느낌이었다. 안전장비가 없어진 느낌이었다. 나도 그렇게 느꼈는데 여자친구는 어땠을까. 그녀 또한 많이 무서워했다. 큰 차들은 무서워서 속도가 느려진 우리를 답답해했고 뒤에서 계속 빵빵거렸다. 그때마다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도로에서 무서웠다. 그럼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해서 하기로 한 스쿠터 체험을 무서웠지만 그걸 참고 따라와줬다. 2시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무서움을 참고 견디면서 내 뒤를 묵묵히 따라와줬다. 그렇게 무서웠지만 시원하고 자유로움을 느꼈던 우리의 첫 스쿠터 주행을 마쳤다.
지나고나니 이 시간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 이때를 추억하면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고맙다. 사랑받는 느낌이었다. 두려움을 안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이거야말로 사랑의 표현이자 온몸으로 하는 사랑 중에 하나였다. 마음이 아픈 점은 당시에 나는 그렇게까진 느끼지 못했다. 무서워하지만 끝까지 나를 따라와준 그녀에게 고마웠다. 하지만 그게 그녀의 사랑이라고는 느끼지 못했다. 안쓰러움과 고마움만을 느꼈을 뿐이다. 하지만 지나고나니 그건 아무나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아무에게나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걸 같이 해주기 위해서 두려움을 견디는 행위. 그건 분명 사랑이었다. 그걸 당시에 몰랐기에 지나고 나서 마음이 아픈 것이다.
나는 그녀를 위해서 어떤 두려움을 극복해봤을까? 나는 앞으로 사랑을 위해서 어떤 두려움까지 극복할 수 있을까? 쉽게 대답하기 어렵지만 고민해봐야된다. 이게 결국 나의 사랑할 수 있는 역량과 한계를 보여주는 것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