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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명철 Dec 19. 2024

홀로 설 수 있는 이들이 사랑을 확대한다

홀로 설 수 있는 이들의 아름다운 사랑


홀로 설 수 있는 이들의 아름다운 사랑


의존적인 이들이 사랑을 왜곡한다면 홀로 설 수 있는 이들의 사랑은 아름답다. 그들은 사랑의 시작단계에서도 사랑을 오해하지 않고 사랑의 과정에서는 사랑을 확대하며, 사랑의 끝도 능동적으로 맞이한다. 홀로 설 수 있는 성숙한 이들의 사랑은 의존적인 이들의 사랑과 많이 다르다.


홀로 설 수 있는 이들은 사랑을 시작할 때 돈, 명예, 외로움, 안정감 등 본인의 필요와 결핍이 만든 부차적인 것들을 사랑이라 오해하지 않는다. 필요하고 의존하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며 사랑을 시작하지 않으며 상대방 자체를 좋아하는 사랑의 원형에 가까운 감정으로 사랑을 시작한다. 


홀로 설 수 있는 이들은 사랑하는 이로부터 사랑 외의 다른 것들을 기대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의 소중한 마음만 받을 수 있다면 다른 건 상관이 없다. 홀로 설 수 있는 이들은 스스로 책임지고 기쁠 수 있는 역량이 있기에 나의 기쁨을 위해 상대방이 슬프거나 고생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로 인해 상대방이 기쁘기를 원하며 상대와 함께 기쁠 수 있도록 노력한다.


홀로 설 수 있는 이들의 사랑에도 의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의 의존은 의존적인 사람들의 의존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들의 의존은 자신이 상대에게 의존하는 자발적 의존이 아니라 상대가 내게 의존할 수 있도록 해주는 비자발적 의존이다. 충분히 내게 기대고, 사랑하는 이가 나로 인해 기쁨과 평온을 느낄 수 있도록 어깨를 제공한다. 홀로 설 수 있는 이들이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주는 것은 서로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일과 같다. 혼자서도 뛸 수 있는 사람이기에 사랑하는 이에게 도움을 받으면 더 멀리 뛸 수 있다.


의존적인 이들의 이별이 수동적 이별이라면 홀로설 수 있는 이들의 이별은 능동적이다. 홀로 설 수 있는 이들의 이별도 물론 아프다. 오히려 사랑에 가까운 감정으로 시작했기에 더욱 아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이별을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기쁨보다 슬픔이 클 때, 더 이상 그들의 관계에서 사랑이 남아있지 않았을 때 그들은 이별을 선택할 수 있다. 이별 후 찾아오는 아픔이 두려워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서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다. 홀로 설 수 있는 이들은 이별 뒤 찾아오는 시린 아픔을 온전히 버티며 한때 사랑했던 이와의 관계를 소중히 마무리한다.




홀로 선다는 것은 어렵다. 근면, 지혜, 용기, 역량 등 많은 것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역경의 시간을 보내야한다. 그 시간이 고되고 힘들기에 많은 이들이 쉽게 타인에게 의존하려고 하는 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역경의 시간을 건너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할 성숙한 사랑이 기다리고 있다. 그 무엇보다 서로에게 큰 기쁨을 줄 사랑이 기다리고 있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모든 고귀한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드물다. 고귀한 사랑을 위해 우리는 어렵고 드물지만 홀로 설 수 있는 이가 되어야한다. 아니 홀로 설 수 있는 이 자체가 이미 고귀한 사람일테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랑을 하기 위해 어렵고도 드문 길을 걸어가야한다. 그렇게 서로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사랑을 하러 나아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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