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잊고 현재에 집중해!'라는 말의 함정
망각은 사람의 생존에 있어서 필수적인 능력이다. 살면서 겪는 크고 작은 고통들은 망각을 통해서 우리 기억에서 잊혀진다. 만약 망각이 없다면 과거의 여러 아픈 기억들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누적되어 괴롭힐 것이고 그 누적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다행히 많은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옅어진다.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희미해지는 기억들이 많다. 하지만 어떤 기억들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선명해져서 망령처럼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는 기억들이 있다. 이런 기억들은 대체로 부정적이고 고통스러운 기억이라 현재를 살지 못하게 하고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과거의 아픈 기억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흔히하는 조언이 있다. '과거를 잊고 현재에 집중해!' 라는 말이다. 이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많은 이들이 경험으로 알고 있다. 과거는 내가 잊고 싶다고 잊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잊으려 할수록 커지는 경우가 많다. 만약 '나의 의지'로 과거를 잊을 수 있다면 과거에 대한 후회와 회환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지는 않을테다. 그러면 과거의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 현재를 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현재의 기쁨을 통해서만 과거를 망각할 수 있다.
망각은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찾아온다. 기억은 잊는 게 아니라 '어떤 것'에 의해 잊혀지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어떤 것은 '슬픔'이 아니라 나를 현재에 강하게 몰입하게 만드는 '기쁜 것'이다.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다른 생각이 안나고, 이별한 뒤에도 친구들을 만나 하하호호 떠들다보면 잠시 이별의 고통을 잊게 되고, 시험에 떨어지거나 회사에 안 좋은 일이 있더라도 사랑하는 이를 만나면 그 시간동안 걱정들이 사라진다. 이처럼 우리는 현재에 기쁨을 만났을 때 과거를 잊게 되며 마주친 기쁨이 크면 클수록 과거의 큰 슬픔 또한 잊을 수 있다.
현재의 기쁨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기쁨이 지속되었을 때 힘들었던 과거가 다르게 기억되기 때문이다. 지난 연인과 이별했던 힘들었던 기억이 새롭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좋은 사랑을 알려준 고마운 기억으로 남고, 회사에서 해고되어 힘들었던 기억도 새롭게 좋아하는 직업을 찾게 되면 새로운 직업을 찾게 해준 계기로 기억된다. 이렇게 기억은 언제나 현재의 상황에 따라 재해석 되기 때문에 슬픈 기억을 기쁨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재의 기쁨이 중요하다.
과거의 슬픈 기억을 '능동적인 정신작용'만으로 털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슬픈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현재의 기쁨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망각은 수동적으로 찾아온다는 것을 잊지말고 기쁨을 찾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해야된다. 한 번에 큰 기쁨을 못 찾아도 괜찮다. 일상에 쌓인 작은 기쁨들만큼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에 살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큰 기쁨을 만나게 됐을 때,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나 온전히 현재에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과거를 잊고 현재에 집중해!'라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과거를 잊기 위해서는 현재의 기쁨에 집중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