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어떤 고통을 껴앉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by 강명철

퇴사한 지 이제 5개월 정도가 됐다. 아직 시간이 많이 흐르진 않았지만 조금씩 현실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쩌면 나는 퇴사할 때 유토피아를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회사를 다니는 것이 힘들었기에, 회사를 그만두면 이런저런 고민과 불안이 있지만 삶에서 고통은 없어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삶은 없다. 어떤 선택이든 그에 따르는 고통이 있다.


회사를 다닐 땐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회사에 갇혀있는 게 힘들었다. 피곤해도, 밖에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었다. 정해진 시간동안 사무실에 꼼짝없이 앉아있어야 했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상사와 한 방에서 하루종일 함께 있어야 했고, 하기 싫은 업무가 있더라도 위에서 시키면 해야했다. 부당한 언행과 업무시지도 참고 해야했고, 급하게 주어지는 업무가 있으면 몸과 마음이 쫓기면서 일을 해야했다. 이런 것들은 내가 회사생활을 선택하고 겪어야 되는 고통이었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는 안정적인 월급, 좋은 사회적 시선이 주어졌다.


회사를 그만둔 삶에도 분명 고통이 있다. 회사를 안 다니기에 아예 수입이 없을 때도 있고, 알바 등을 하면 수입은 있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적은 수입이 생긴다. 수입이 적으니 먹고 싶은 거, 사고 싶은거, 가고 싶은 데를 예전처럼 마음 편히 못하고 아껴 써야 하는 고통이 있다. 고정적인 일자리를 못 구했다면 들쑥날쑥한 수익에 불안함을 견디기도 해야한다. 스스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쌓고, 안 가본 길을 개척해야 하기에 오랜 기간 동안 심리적 압박도 견뎌내야한다. 주위 사람들과 다른 길을 걸어가기에 가족, 친구, 사회의 시선을 견뎌내야 하고 고독과의 싸움도 이겨내야한다. 이처럼 퇴사를 한 삶에도 그만의 이겨내야 할 고통들이 있다. 이런 고통을 감내 해야하는 이유는 자유로운 시간, 주체적인 삶,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함이다.


일뿐만 아니라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이다. 운동도 고통을 감당하는 일이다. 웨이트를 하면 고통스럽다. 무거운 것을 힘들게 들어야 하고, 매일 그것을 반복해야 한다. 어제보다 조금 더 무게를 올리면서 그 고통을 유지하거나 더 키워야한다. 그렇게 고통을 감당하고 났을 때만 좋아진 체력, 좋아진 몸, 건강해진 신체가 행복으로 뒤따른다.


어쩌면 나는 삶에서 어떤 유토피아 같은 선택지가 있다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고통없이 행복만 있는 선택지가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런 선택지를 찾고 해맸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보니 그런 선택지는 없다. 어떤 선택이든 행복과 그를 따라오는 고통이 있다. 어떤 행복은 고통이 있는 뒤에야 따라오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여러 선택지 중 어떤 것이 내게 진짜 행복을 줄지 알아야하고, 그 선택 뒤에 따라오는 고통을 인지하고 껴안아야 한다. 혹은 먼저 찾아온 고통을 견뎌낸 뒤에 행복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고통없는 삶도 없고, 고통없는 행복도 없다. 중요한 건 조금 더 행복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따라오는 고통을 기꺼이 껴앉고 감당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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