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니 조금씩 보이는 것들

by 강명철

회사를 그만둔지 이제 3개월이 조금 넘었다. 이 생활이 신기하기도 하다. 노동없는 삶을 살아본지가 너무 오래됐었다. 회사를 다닐 땐 이직을 할 때도 금요일까지 일하고 다음주 월요일에 출근했었기에 이렇게 길게 쉬어본 적이 없었다. 창업한 회사에서 나오고 1년동안 학교를 다닌 이후로 7년만에 다시금 휴식을 가진다. 30대 중반에 되어서 가지는 이 휴식이 반갑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묘한 감정이 교차한다.


시간이 있으니 지난 과거들이 많이 떠올랐다. 항상 아끼며 살아왔던 것들,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인색했던 시간들, 사랑했던 사람들을 떠나 보낸 순간들, 내 욕망들을 내팽겨놨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생각할 때 마다 아프기도 했고 후회도 됐다. 그 시간들을 글로 쓰면서 어느정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후회와 반성이 내 생활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했다. 습관은 강력해서 다시금 과거로 돌아가려고 한다. 습관의 장력이 나를 강하게 잡아당긴다. 그럴 때마다 나를 붙잡는 건 후회와 반성으로 쓴 글이다. 어제 쓴 글도 사실 모든 내용이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한 문장들이 기억에 남는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한 문장으로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어제보다 더 나은 하루를 살려고 애쓴다.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가진 걸로 승부를 볼 수 밖에 없다. 내가 가진 게 없는데 외교관을 하거나 삼성전자 임원이 될 수 없다. 내가 해왔던 걸로 승부를 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쌓을 것인가도 고민해야한다. 그걸 꾸준히 해나가면서 쌓아가야한다. 그 뒤의 결과는 내가 쌓은 것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먼 미래의 걱정은 의미가 없다. 그 시점에 가서 내가 쌓은 걸로 승부를 보는 것이다.


어떤 걸 쌓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하루하루 그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것이다. 반복하는 것이고 조금씩 쌓아가는 것이다. 하루 아침에, 단기간에 무언가를 습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것으로 돈을 버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그동안 무엇을 쌓았나? 고민해봤다. 딱 3개밖에 없었다. 직업으로 했던 투자 업무, 그나마 자주 헬스장에 가서 해왔던 운동, 그리고 좋은 스승과 친구들과 함께 배운 철학이었다. 이 3개 말고는 나는 매일 혹은 꾸준히 하며 쌓은 게 없었다.


꾸준히 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요즘 많이 느낀다. 무엇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어려우면서도 쉽다. 정신이 머리에 많이 가있으면 어렵고, 그냥 머리를 날리고 하면 쉽다. 잡생각이 들면 무엇인가를 꾸준히 하기 어렵고 그냥 무시하고 하면 그나마 쉽다. 많은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하면 어렵고, 아무 기대도 없이 그냥 매일 조금씩 하면 다소 쉬워진다.


얼만큼 반복이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어떤 것을 반복하여 이룬 성취가 크게 없기 때문이다. 조금씩 하다보니 작은 결과들이 생긴 것은 있었다. 철학을 그냥 공부하고 듣다보니 조금씩 철학자 이름을 알게됐고, 운동을 하다보니 언제부터인가 몸이 좋아졌고 무게도 늘게됐다. 그 과정이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철학과 운동 둘 다 할만했고 재밌었다. 벤처투자업무는 철학과 운동이랑은 좀 다르다. 일이기 때문에 애를 많이 쓰면서 했다. 그 과정이 꽤 괴로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즐겁고 보람찼던 기억보다 힘들었던 기억이 더 많이 남아있다.


불안은 다소 허상이다. 내가 가진 것 이상을 바랄 때 나는 불안할 수 밖에 없다. 내가 가진 것으로 승부를 볼 수 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된다. 좀 더 많은 걸 바란다면 하루하루 쌓아나가는 수 밖에 없다. 하루하루 몸으로 쌓아나가자. 그 길말고 다른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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