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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직장생활은 수동성을 몸에 배게 한다

by 강명철

직장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안 좋은 점은 삶을 점점 더 수동적으로 살게 된 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수동적으로 일을 하게 된다. 상사가 시키는 일을 정해진 방식으로, 정해진 기한에 맞춰서 일을 하게 된다. 자율성이 어느정도 주어지긴 하나 대부분의 업무를 수동적으로 행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직장인으로서 오랫동안 수동적인 삶을 살다보면 어느샌가 자신의 삶 전체가 삶 전체가 수동적으로 변하게 된다. 하루에 대부분의 시간을 남이 시키는 일을 시키는 방식대로 하다보니 능동적으로 사는 방법을 점점 더 잊게 된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생각하거나 생성하는 방법을 잊게 되고, 수동적으로 남이 시키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점점 편해진다. 주변에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한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어떤 것들을 스스로 생산하는 법을 잊어버린 경우가 많다. 단지 회사에서는 주어진 일을 하고, 퇴근 후에는 TV, 술, 음식 등 일차원적인 소비행위만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점점 더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보고 생산하는 것을 잊어버린 수동적인 인간이 되어간 것이다.


수동적인 삶은 짧게 보면 편할 수 있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갈수록 회사, 타인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생성하지 못 한다면 평생 노동자로서 살 수 밖에 없다. 노동은 분명 고귀하고 꼭 필요한 것이지만, 자본주의 아래에서 노동자로서의 삶은 많은 경우 타인의 눈치를 보고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며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회사, 타인에 대한 의존이 커지면 커질수록 좋은 환경에서 당당하게 노동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줄어들고, 상사의 눈치를 보고 해고 등의 불안에 떨며 일을 해야하는 가능성은 점점 더 늘어난다.


삶을 능동적으로 사는 것은 분명 피곤한 측면이 있다. 무엇을, 어떻게 생성할지 스스로 고민하는 것은 어렵고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언젠가 회사를 그만 둘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일하는 시간 외에 본인이 원하는 것을 능동적으로 해보려는 시도를 계속 해야한다. 무엇을, 어떻게 생성할지 스스로 계속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시도해봐야한다. 회사에서 독립을 한다는 것은 결국 무엇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생산자가 되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생성하는 연습을 하나씩, 차곡차곡 해보자. 자동차, 휴대폰, 앱 서비스 같은 거창하고 대단해 보이는 것이 아니여도 된다. 짧은 글, 요리, 연주 등 소소한 것이라도 상관없다.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조금씩 능동적으로 생성하는 연습을 늘려갔을 때, 우리는 언젠가 수동적으로 일할 수 밖에 없는 노동자에서 벗어나서 능동적인 생성자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리고 수동적으로 남이 시키는 일을 하는 삶보다 능동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삶이 더욱 행복할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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