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는 업계는 회식이 많은 편이다. 점심 회식도 많고 저녁 회식도 많다. 조금 특이한 점은 이 회식이 꼭 필요한 회식이거나 강제로 참여하는 회식이 아닌 자발적으로 약속을 만들고 참여하는 회식이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주 자발적으로 회사·업계 사람들과 저녁 약속을 만들고 늦게까지 술을 마신 뒤 집에 들어간다.
처음에 이 업계에 왔을 때는 이런 약속들이 모두 필요한 약속인 줄 알았다. 점심·저녁 약속을 통해 쌓은 네트워크가 업무에 도움이 되기에 많은 동료들이 점심·저녁 약속을 잡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업계에 들어와 몇 년을 일해보니 알게 됐다. 동료들이 많은 저녁 약속을 잡는 이유는 정말로 업무에 도움이 되서라기보다 심심하고 외로워서였다. 많은 동료들이 퇴근 후에 만날 사람이 없어서, 혹은 집에 일찍 들어가기 싫어서, 술을 마시고 싶어서 업무에 도움이 된다는 명분을 삼아 잦은 저녁 약속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약속들들 중 업무에 도움이 되는 비중은 10%도 안 되었고, 나머지는 대부분 술자리를 즐기는 목적이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즐기는 술자리가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나도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즐거운 저녁자리는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큰 행복 중 하나이다. 하지만 문제는 업계 사람들과의 저녁자리는 그런 깊은 관계로 맺어진 자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친한 친구들과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이야기를 공감하고 들어주는 자리가 아니라, 피상적인 일이야기가 주를 이룬다는 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집에 가면 왠지모를 공허감이 온 몸을 휘감는다. 마음 속부터 나를 채워주는 느낌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모두 소모하고 빈 껍데기로 집에 돌아오는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들이 공허한 술자리를 그렇게 가지는 것일까? 이 의문을 가지고 동료들을 계속 지켜봤는데 결국은 외로움이었다. 동료들은 외로웠다. 하루종일 회사에서 압박을 받으며 일한 뒤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서 몸과 마음을 달랠 방법을 모르거나,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고 서로를 채워줄 관계가 없었다. 그러니 그 대안으로 업계 사람들과 저녁자리를 가지며 외로움을 달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악순환을 불러왔다. 공허함을 또 다른 공허함으로 달래는 것이었고, 거기에 술까지 더해져서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축나고 있었다. 실제로 이 패턴으로 오랜 시간을 보낸 동료 중 한 명은 스트레스와 술로 인해 한쪽 눈이 안 보일 정도로 시력이 나빠졌지만 다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시간을 보낼 방법을 몰라 계속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그 시간이 계속 길어지니 그의 건강은 옆에서 봐도 느껴질 정도로 조금씩 안 좋아지고 있다.
슬픈 현실이다. 30대 중후반을 넘어가고 있지만 퇴근 후 얼마없는 짧은 시간조차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 공허한 술자리로 채우고 있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조금 더 늦기 전에, 아직 건강과 체력이 허락될 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것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한다. 공허함으로 자신을 소모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채워주는 것 옆에 서있어야 한다. 그렇게 자신을 조금씩 채워가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