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위축된 상태를 사랑이라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내가 과도하게 눈치를 보는 것이 상대를 위한 행동이라 생각했고, 나의 욕망과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 않은 것이 상대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이 진짜 상대를 위한 행동이 아니라 나의 위축에서 오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오히려 관계에도 더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도 서서히 알게되었다.
나의 감정과 욕망을 억누르고 상대방에게 대부분을 맞춰주는 행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부작용을 만들었다. 첫 번째는 내 감정과 욕망을 억압하니 삶이 점점 슬픔으로 나아갔고, 내가 누리는 기쁨이 점점 줄어드니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 많아지게 된 것이다. 상대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했고 상대가 내게 기쁨을 주지 않으면 우리는 인연이 아니라 생각했다. 내 삶의 기쁨이 줄어든 것을 상대의 탓으로 생각하고 상대가 내게 희생한만큼 내게 배려를 안하면 서운해하고 화를 내었다. 상대가 원한 것이 아니라 나의 위축 때문에 한 과도한 희생을 상대 탓을 하게 되었다. 왜곡된 피해의식이 생긴 것이다.
두 번째 부작용은 내 삶에 기쁨이 사라지니 상대에게 줄 기쁨도 없어졌다는 것이다. 내가 일상에서 느끼는 기쁨이 많아야 그 기쁨을 상대에게 나눠줄 수도 있고 상대가 슬픔을 느낄 때 그 슬픔을 완화해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음악, 영화, 등산 등 내가 좋아하고 일상에서 느끼는 기쁨이 많으면 여자친구에게 그것들을 소개하며 함께 기쁨을 느낄 수도 있고, 그녀가 힘들 때 그녀의 슬픔을 그동안 쌓아온 기쁨을 에너지 삼아 덜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내 삶의 기쁨을 억눌렀기에 상대에게 나눠줄 기쁨이 없었고, 상대의 작은 슬픔도 받아 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상대는 내게서 점점 더 내게서 기쁨 대신 슬픔을 느끼게 된 것이다.
세 번째 부작용은 과도하게 상대 눈치를 보니 어느새 상대가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 점점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함께 있을 때 그녀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니 그녀가 점점 불편한 대상으로 느껴졌다. 자연스러운 나는 없어지고 그녀 앞에서 항상 긴장하고 눈치보는 내가 남아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녀가 불편해지고 멀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그녀와 함께 있고 함께 기쁘기 위해서 시작한 배려가 결국 그녀와 거리를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만든 것이다.
위축과 사랑은 얼핏보면 닮아있지만 깊숙히 들어가면 그 근원이 다르다. 사랑은 '너'를 보는 것이지만 위축은 '너'를 보는 것이 아니라 불안하고 겁먹은 '나'를 보는 것이다. 그러니 위축된 사랑은 진정한 사랑으로 가닿을 수 없다.
용기있는 사람만 사랑할 수 있다.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긍정하고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만이 그 경험과 에너지를 가지고 사랑하는 이의 감정과 욕망을 세심하게 살펴봐줄 수 있다. 이제는 위축된 상태로 오로지 내 문제에만 예민한 사람을 넘어서서 타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읽을 수 있는 상태로 넘어가고싶다. 그러기 위해서 나의 욕망과 감정을 긍정하는 연습을 앞으로 해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