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효율에 대한 담론이 지배된 사회이다. 같은 노력이면 최대한의 금전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 미덕으로 꼽힌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많은 보상을 얻는 행위를 하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으로 꼽히고, 많은 노력을 하더라도 금전적 보상이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일론머스크, 잰슨황 등 사업가와 김앤장에 일하는 변호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반면에 화가, 가수, 작가 등 많은 노력을 하더라도 금전적으로 성과를 못 내는 사람들은 존종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자본주의적 효율성은 상대를 판단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가 어떤 행동을 할지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주식 투자, 부동산 공부, 부업 등 돈을 만드는 행동을 하는 나는 긍정이 되지만 그림, 악기 연주, 여행, 요리 등 돈이 안 되는 일을 하는 나는 긍정되지 않는다. 돈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행위들은 내게 선이 되고, 돈을 버는 것과 거리가 멀거나 오히려 돈을 쓰는 행위는 악이된다. 그것이 삶에 기쁨을 주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자본주의적 효율성이 더욱 치명적인 것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랑도 자본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사랑은 자본주의적 효율성으로 바라보면 해서는 안 되는 행위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 돈은 계속 줄어들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데이트, 선물을 하며 힘겹게 번 돈을 소모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더 큰 기쁨을 얻게 되지만 자본주의적 효율성에 빠진 사람들은 사랑에서 얻는 기쁨보다 돈이 사라지는 것에서 더 큰 슬픔을 느끼게 된다. 그들에게는 사랑은 비효율적인 행위이자 사치가 되며 악이된다. 그렇기에 자본적 효율성, 즉 자본을 더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좋은 조건을 가진 배우자를 찾게 되고, 손해보지 않는 사랑을 하려고한다. 자본주의적 효율성과 사랑이 결합될 때 사랑은 왜곡되고 그 자리에는 거래만 남게 된다.
자본주의적 효율성의 또다른 치명적인 점은 개인이 다른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을 줄인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취업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20년 가까이 교육과 훈련을 받는다. 20년을 넘게 교육을 받아 취업을 하고 돈을 벌게 되었다면 가장 잘하는 것은 내가 취업한 영역에서 돈을 버는 것이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은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익혀야 하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자본주의적 효율성에 빠진 사람이라면 이를 비효율적이라 생각하고 선택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비효율적인 과정, 노력과 시간을 쏟아붇는 시간이 없다면 새로운 삶이 열릴 가능성은 없다. 효율성의 논리에 빠진다면 지금의 삶 너머 다른 삶으로 넘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효율성이 선이자 미덕이라는 자본주의적 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효율성의 함정에서 벗어나야만 지금과는 다른 삶을 꿈꾸고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