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 디자인 노트 04
공모전 오답노트(1) 공익광고제
언제부터였을까, 대한민국이 공모전 공화국이라 불리게 된 것은. 조금만 찾아봐도 온갖 이름의 공모전이 넘쳐난다. 주최사가 크든 작든 공모전은 등수를 매겨 누가 잘했는지를 눈에 띄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기 있다. 줄줄이 쌓인 공모전 이력들은 훈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글의 시작이 부정적인 어감을 품고 있긴 하지만, 이 글은 공모전을 비판하는 글은 아니다. 오히려 공모전을 준비하며 이룬 긍정적인 성과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글이다. 가시화된 성과를 좋아하는 풍토에 나도 어느샌가 적응했다. 여러 해 전부터 공모전에 꾸준히 머리를 들이밀게 되었다. 수상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도 마감일을 두고 무언가를 완성해나가는 경험은 꽤나 값지다. 공모전 출품작이라 이름 붙여진 작품들은 내 포트폴리오가 된다.
지금부터는 내가 도전했던 각종 공모전의 개인적인(!!!) 분석과 접근 방식, 거기서 느낀 점들과 얻게 된 나름의 성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코바코에서 주최하는 공익광고제는 규모가 큰 공모전이다. 일단 이름에도 무려 대한민국이라는 거창한 규모의 수식이 붙어 있다. 전 국민이 와르르 몰려들 것 같은 공모전이다. 실제로 인지도도 굉장히 높다.
tvcf에서 자주 보는 공익광고는 특유의 묵직한 분위기에 더해 ‘공익광고협의회’라는 내레이션과 징글이 인상적이다. 공익광고에는 그 세계에서 통하는 독특한 문법과 결이 있다.
1) 한 가지의 명확하고 간결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그 메시지에 ‘공익성’이 중요하다 보니 착하고 멀쑥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2)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므로(모든 광고가 마찬가지겠지만) 직유의 표현들이 눈에 띈다. 간단하게 한 번 비튼 비유가 어떤 새로운 생각을 유발하게 하는 식이다.
3) 카피가 제법 분량이 되어 설명적이라는 느낌을 줄 수도 있겠다.
다음은 공익광고제 수상작들이다. 간단한 오브제와 여백, 한 두 줄의 헤드 카피와 작게 쓴 바디 카피로 이루어져 있다. 습니다체의 질문형 카피도 많은 편이다. 예의 바르면서도 의무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익광고제의 또 다른 특징은 TV와 인쇄 광고의 경우 주제가 자유라는 점이다. 이슈 선정부터가 공모전의 시작이다. 공익적이고 따뜻하면서, 시의성이 있고 중요해야 한다. 최근에 많이 나온 주제들은 폭력(학교폭력, 가정폭력, 언어폭력, 악플 등)에 관한 주제, 교통안전(음주운전 금지, 운전 부주의 방지, 교통신호 준수 등)에 관한 주제, 소수자(다문화 가정, 장애인 등)에 대한 편견을 일깨우고 다양성을 장려하는 주제, 스마트폰이나 SNS 사용의 문제점에 관한 주제, 환경 보호에 대한 실천을 요구하는 주제 등이 있었다. 해마다 특히 더 시의성을 보여주는 주제도 있었다. 15년도에는 갑질, 16-17년도에는 층간소음과 혐오표현, 18년도에는 반려동물 문제가 두드러졌다.
흔한 주제들의 경우 그만큼 오래 지속된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칫 이슈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지나치게 쉬운 접근은 어디선가 본 듯하거나 별 다른 울림을 주지 못한다. 쉬워 보여야 하지만 쉽게 접근하면 안 된다는 게 공익광고제의 포인트인 것 같다.
쉽고 간단해 “보여야” 한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이 공익광고제에 나는 두 번 출품했다. 한 번은 2016년, 또 한 번은 2019년, 그러니까 올해다. 마감일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16년도 출품은 탈락했고, 19년도는 아직 발표가 나지 않았지만 솔직히 말해 수상을 기대하진 않는다. 마지막 날까지 머리를 쥐어뜯었지만 쉽고 단순하게 표현한다는 건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말이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쉽게 생각하면 쉽게 진부해진다.
쉬워 보이되
쉽게 생각하지 말라
이 공모전에 접근하는 방식은 이런 순서로 이루어졌다. (인쇄광고)
1) 역대 수상작을 통해 이슈와 문법을 이해한다.
이슈는 위에 나온 것과 같이 분석했고, 어떤 표현 방식을 썼는지, 화면은 어떻게 분리하고, 요소들은 어떻게 배치했는지, 카피의 어감은 어떠했는지, 글씨 크기는 어땠는지 등의 광고 문법을 세세하게 파악했다.
2) 나올 수 있는 모든 이슈를 줄지어 써본다.
환경, 플라스틱, 장애인, 장애 묘/견, 점자, 교통안전, 블랙독/검은 고양이, 언어폭력, 전동 킥보드 헬멧, 난민 문제, 불법 촬영, 스마트폰 소통 부재...
층위도 상관 않고 줄줄이 썼다. 그다음엔 기사를 서치하고, 주변 사람과 이야기해보면서 이슈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킨다. 이를테면 ‘지하철 점자 표기’를 검색하다 보니, 사람들이 부주의하게 점자 위를 이물질로 덮어 버리거나, 점자가 훼손된 채 방치되어 불편을 겪고 있다는 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3) 그중에서 시각화시킬 법한 이슈를 찾아내 아이디어를 정리한다.
내 메모장을 잠시 살펴보면 아래와 같은 메모들이 있다. 메시지를 어떤 시각적 오브제를 통해 드러낼지 아이디어를 끌어내 적었다. 나는 결국 ‘시각장애인의 지하철 점자 문제’를 택했다.
여기까지,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중에 무언가를 택해서 시각화를 시키는 순간 일은 복잡해진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과 남들이 보고 느끼는 것에는 괴리가 있다. 그 간격을 맞추는 일이 가장 어려운 지점이다.
이 시각화에 대해서는 작업 순서보다는 내가 느낀 주의점을 위주로 말하려고 한다.
*주의점*
1) 오해가 없어야 한다. (그러려면 지나치게 은유적이지 않아야 한다)
3번과 연결되는 말이다. 조금 전에 공익광고는 직유의 표현이 많다고 했다. 직유가 일대일로 대응되는 비유라면, 은유는 은근한 암시다. 쉽게 알아듣지 못하도록 일부러 숨긴 것이다. 은유가 잘 활용되면 큰 울림을 줄 수도 있지만, 오해를 유발하기도 한다. 오해가 생기면 메시지 전달에 장애가 생기며 말하고자 했던 의도와 정 반대의 부정적 의미로 읽히기도 한다.
2) 누구도 상처 입히지 않아야 한다.
내 작업으로 예시를 들어본다.
장애인이라는 주제를 선택했을 때, 카피나 시각적 표현들이 무의식적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 짓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남들이"와 "누군가"에도 온갖 고민이 있었다. "남들이"의 자리에 “모두가”를 집어넣으면 마치 비장애인을 상식 혹은 기준점으로 두는 것 같았다. 또 저 지하철 노선도와 점자 사이에 선을 그으면 두 상황을 효과적으로 대비시킬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자칫 “선”이 내포하는 의미가 의도치 않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 짓기를 형성할 수도 있었다. 그런 점들을 신경 쓰다 보니 이 일이 어렵다는 사실을 점점 실감했다. 결국 이 카피는 완전히 버렸고, 시각적으로도 수정을 가했다.
3) 메시지는 하나여야 한다.
이 말을 오해했던 처음에, ‘시각장애인의 점자 표기에 관심을 기울여주세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다. 지나치게 포괄적이지만 어쨌든 메시지는 하나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고 나면 그래서 점자가 부족하다는 건지, 점자 표기가 잘못되었다는 건지, 점자가 잘못된 곳에 있다는 건지, 그 메시지를 알기 어려웠다. 메시지는 명확하게 세분화된 하나여야 했다. 그래서 ‘점자 표기를 훼손하거나 덮지 말아 주세요’라고 메시지를 구체화했다.
이후 끝없는 수정의 굴레를 거쳐 완성본이 나왔다. 훼손된 점자를 표현하기 위해 스티커와 껌을 붙였다. 환승 표시의 색깔과 껌, 스티커의 색깔을 매치시켰는데 눈에 띄진 않는 것 같다. 직설적인 화법은 아니지만 내비게이션을 연상시키는 카피를 통해 시각장애인들의 불편한 상황을 부각했다. 비시각장애인이 아무 생각 없이 최단경로를 검색하는 동안 시각장애인은 (훼손된 점자로 인해) 경로를 찾을 수조차 없는 상황에 놓인다는 거다. 비시각장애인도 그 상황을 이해하고 관심을 가지길 바랐다.
여러 번 더 나아짐을 경험했지만 결과물이 썩 훌륭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강렬한 임팩트를 주는 간결한 메시지가 없었다. 마감 시간이 다가왔으므로 우선은 제출했다. 대체로 평은 이러했다. "무슨 말인진 알겠는데 좀 밍숭맹숭하네"
메시지가 너무 어렵다는 건 처음 출품했던 광고에서 큰 문제였다. 맹목적으로 경쟁에 집착하는 교육의 획일성을 비판하는 내용이었지만, 보자마자 바로 파악하기엔 애매모호했다. 조금 더 쉽게, 간단하고 간결하게, 그러나 임팩트 있게!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 다음번엔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수상의 기쁨도 좋지만, 공모전으로 배우고 점차 나아지는 것도 뿌듯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