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리 May 22. 2024

적당한 거리

사람은 상대의 적당히 포장된 상태를 좋아하는 것 같다. 좋아한다고 해서 무작정 포장을 풀어버리면 안 된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마음으로 뭐든지 다 예뻐 보이는 경우가 많으니까. SNS로 자신을 드러내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어떤 가면을 쓰고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을 보여주거나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포장해서 드러내기도 한다. 완벽하게 솔직하고 민낯 그대로를 보여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를 드러내는 것이 무섭다. 그러면서도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는 이중적인 마음이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나의 부족하고 모난 부분을 안에 숨기고 적당히 예쁘게 포장했으니까 결국은 내 잘못이다. 나의 이런 모습까지 좋아해 줄까, 했던 그 마음은 의심에서 확신으로 바뀐다. 그럼 그렇지.

적당한 거리.

적당한 다정함.

적당한 친절.

적당하다는 건 얼마만큼일까.

있는 그대로 봐주길 원하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포장을 너무 빨리 풀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너무 좋아서,라는 변명을 해본다. 불특정다수에게 보이는 글에서는 나를 포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얼굴을 보고 나면 그럴 수 없다. 눈빛은 들키기 때문이다. 눈을 보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당신과 눈을 마주쳤고 눈빛은 속일 수 없었다. 그저 좋았던 눈빛에서 서늘한 바람이 들 때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사랑을 오래오래 지키는 사람이 아니었다. 

거센 감정의 파도가 일렁이고 그 안에서 사이좋게 멀미를 했다. 함께 파도를 이겨내면 좋았을 텐데. 어지러운 내 마음만 보느라, 들이치는 파도가 무서워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뒷걸음질 쳤다. 아직도 문득 멀미가 나듯 어지럽다. 잔잔해지고 있다고 믿으며 일렁이는 파도를 담담하게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겨울 한가운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