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는 게 매우 많은 인간인 나는 음식도 마찬가지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많이 들었던 말이 뭐든 다 잘 먹게 생겼다는 말인데, 그 말도 싫어한다. 네가 뭔데 날 판단해!!! 아, 시작부터 다른 길로 갈 뻔 했다.
각설하고,
내가 싫어하는, 그것도 아주 싫어하는 음식이 몇 가지 있다. 그것은 사랑의 힘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몇 가지다.
음식이라고 하면 먹었을 때 기분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데 입에 넣기 전부터 기분이 좋지 않는 음식이 있다.(음식이라기보다 식재료라고 해야할 것 같다.) 생김새나 냄새, 식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다보니 더 유난스럽게 따지는 것 같기도 하다. 싫어하는 음식 중 대표주자는 바로 해산물이다. 나는 변덕쟁이에다 기복이 심하다보니 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에 싫었다가 좋아진 것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말 싫은 몇 가지가 있다. 바로 해삼, 멍게, 개불, 성게, 굴 같은 미끌거리고 보기에 징그러운 것들이다. 일단 시각에서부터 탈락인데 미끌거리는 촉감이나 물컹거리는 식감은 정말 최악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멍게를 주면서 먹어보라고 했을 때 눈 딱 감고 먹어보려 했던 나 자신이 기특할 지경이다. 물론 먹지 못했다. 해산물 중에 먹을 수 있는 것은 생선류, 조개, 오징어, 낙지같은 진입장벽이 낮은 것들 뿐이다. 내가 당신과 해산물을 같이 먹는다고 하면 당신을 얼마나 좋아하는 것인지 헤아려주길 바란다. 하지만 난 해산물을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을 것 같으니 미리 사과의 말을 전한다.
해산물을 매일 먹거나 해산물이 주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아서 크게 힘들 일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많은 밥상은 한식이 주를 이룬다. 나는 한식을 가장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중에도 싫어하는 음식이 있다. 밥과 국은 편식을 할 일이 많지 않은데 수많은 반찬에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일이 많다. 특히 싫어하는 반찬은 가지와 호박이다. 나는 가지가 싫다. 호박도 싫다. 호박은 그래도 먹긴 하지만 안 먹는다고 봐도 무방할만큼 잘 먹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가지를 볶음으로만 먹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냥 가지의 식감이 싫다. 색깔은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인데 맛은 너무 이상하다. 무슨 맛으로 먹는지 알 수가 없다. "가지가 얼마나 맛있는데" 하면서 이것저것 레시피를 알려주지 마시라. 더 나이가 들면 먹을 수도 있겠으나 지금은 싫으니까요!
나는 고기를 매우 사랑한다. 고기는 굽거나 찌거나 튀기거나 모든 요리법에 관계없이 다 좋다. 그러나 그 중에서 먹을 수 없는, 못 먹는 고기가 있다. 싫어하는 쪽이 아니라 못 먹는, 안 먹는 것이라고 해야 맞겠다. 눈치챘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 바로 개님이다.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무서워한다.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무섭다. 물론 귀엽기는 하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동물은 아니다. 어쨌든 무서워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개는 먹을 수 없다. 먹어본 적도 없고 먹을 생각도 없다. 냄새도 맡기 싫다. 이상하다. 소도 돼지도 닭도 다 같은 동물인데 어째서 개만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아무래도 어린 시절 개잡는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기 때문일 것이라 추측해본다. 식용과 반려견을 구분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마음 속 깊은 곳에 잠시나마 반려견이었던 작은 나의 강아지가 남아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혹시나 내가 개를 음식의 범주에 넣은 것이 거슬리거나 속상하신 분께 심심한 사과를 보낸다.
싫어하는 것이 너무 많아 날을 새도 모자랄까봐 이정도에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싫어한다기보다 안 먹거나 먹기 싫은 음식도 많고, 나이가 들어 먹을 수 있게 된 것도 많다. 음식에 대한 호불호는 언제든 바뀔 수 있기도 하고 절대적으로 바뀌지 않을 수 있다. 음식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혼자서 먹는 것보다 함께 먹는 먹는 음식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가까운 사이여야한다. 회사와 같은 비지니스관계나 가족과의 식사를 제외하고 함께 식사를 하는 시간이 나에겐 관계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불편한 사람과는 무엇을 먹어도 맛있지 않고 좋아하는 음식마저도 싫기 때문이다. 함께 먹은 밥만큼 우리는 가까워졌을 것이다. 우리가 만났을 때 싫어하는 음식을 빼고나서 교집합의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면 이미 시작부터 좋은 관계일 것이다.
우리 같이 밥 먹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