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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Jun 12. 2024

031.  여름으로 가는 길목

녹음방초



녹음방초 綠陰芳草
명사 푸르게 우거진 나무와 향기로운 풀이라는 뜻으로, 여름철의 자연 경관을 이르는 말.


여름이 시작됐다.



더운 것을 무척 힘들어하는 나에게 여름은 힘든 계절이다. 여름이 되면 벌레가 많아지고 습도가 높아서 끈적하고 햇빛은 뜨거워 땀이 많이 난다. 더운 공기에 불쾌지수는 높아진다. 열대야가 시작되면 밤에도 에어컨을 끌 수 없다.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냄새에 취약한 나는 악취에 시달린다. 장마까지 시작되면 습기를 머금은 쿰쿰한 냄새까지 코가 괴로워진다. 음식은 쉽게 상하고 쾌적한 에어컨은 두통을 유발한다. 여름이 힘들고 싫은 이유는 너무나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만의 매력이 있다. 여름이어서 좋은 순간이 있다.


여름의 선명함이 좋다. 무채색의 겨울에서 차츰 색이 채워지는 풍경. 헐벗은 숲은 점차 연두색에서 초록으로 물든다. 점점 푸르게 짙어지는 숲의 선명함은 햇빛이 쏟아지면 더없이 아름답다. 초록의 나무가 더운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어떤 계절보다 선명한 여름바다도 좋다.



여름은 장마의 계절이다. 비를 좋아하는 내게 온통 비로 가득 찬 세상이 펼쳐진다. 비가 내리면 출퇴근이 힘들어지지만 비 오는 날 운전하는 것도 괜찮다. 비가 내리면 풍경은 더욱 선명해진다. 좋아하는 숲을 보며 쏟아지는 비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걷는 것도 좋아한다. 비에 젖어도 상관없다. 찰박찰박 비웅덩이를 마구 으며 장난치며 걸어도 좋다. 비가 내리면 피어오르는 물안개도 좋다. 그런데 비가 쉬지 않고 내린다니 장마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다가올 장마가 기다려진다.



여름은 가볍다. 옷도 가볍고 공기도 가볍다. 강렬한 햇빛 아래 가벼운 옷차림에 가벼운 슬리퍼를 신고 산책하면 금세 더워지지만 마음이 가볍다. 겨울을 좋아하지만 묵직한 공기와 무거운 옷에 짓눌리는 느낌도 있다. 무채색의 풍경에 마음도 무거워지기도 하니까. 그런 순간을 즐기지만 가끔은 가벼운 여름공기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여름은 싫지만 좋다.

여름이 힘들지만 아름답다.

마치 사랑 같다.

문득 그리워지지만 여름이 오면 다시 힘들어지는 것처럼.

여름이 힘들지만 여름이 좋은 것들이 자꾸만 비집고 나오는 것처럼.


여름은 알쏭달쏭하다.

싫은 줄 알았는데 좋아했나 싶고.

좋아하게 되었나 싶었는데 힘들기도 하고.



올해 여름은 어떨까.

아무래도 그리워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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