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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Jun 21. 2024

039. 나에게 '윤리'란 무엇인가요?

'어느 개 이야기'를 읽고

윤리 (倫理)

1.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

2. 인간 행위의 규범에 관하여 연구하는 학문. 도덕의 본질ㆍ기원ㆍ발달, 선악의 기준 및 인간 생활과의 관계 따위를 다룬다.


나에게 '윤리'란 무엇인가요?


얼마 전에 읽었던 '어느 개 이야기'에 깊이를 더하는 글이라고 세 가지 질문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윤리'에 대한 질문이었다. 윤리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니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라고 한다.

'어느 개 이야기'는 에일린 마보닌이라는 강아지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소 경박하고 허풍이 심한 편인 엄마개는 거창한 단어를 모으는 것을 좋아하고 그 단어를 주변 개들에게 설명하며 유일하게 교양을 쌓은 개였다. 에일린은 엄마가 그저 순발력과 재치로 상황을 이어가는 능력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런 단점을 뒤엎을 정도로 엄마는 멋졌기 때문이다. 거창한 단어나 문장이 아니어도 충분히 멋진 개였으므로. 엄마는 위험에 닥친 순간에 용기를 내라고, 친구뿐만 아니라 모르는 이가 위협을 받고 있어도 함께 맞서 싸우라고 가르쳤다. 그렇게 자기 삶으로 본보기를 보이는 용감한 개였다.

에일린은 엄마와 헤어져 새로운 집에 가서 사랑이 매우 충만한 나날을 보낸다. 새로운 주인은 친절하고 상냥했다. 사랑스러운 강아지를 낳고 행복은 계속될 줄 알았다. 결국 과학자였던 주인에 의해 비극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인간의 문명을 많은 희생으로 발전해 왔으며 그 희생에는 개개인의 인생뿐만 아니라 동물과 자연 역시 포함되어 있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는 문명의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져 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인간의 질병과 더 나은 환경을 위해 너무나 많은 것들이 희생되어 왔다.

"그렇군. 자네의 이론이 이로써 증명되었네. 고통받는 인류가 자네에게 큰 빚을 지게 된 거야."

(p.87)라는 문장이 씁쓸하다. 우리가 빚진 건 그 과학자가 아니라 동물들이다. 고통받는 인류를 위해 동물들의 고통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문명의 발전을 위해 자연은 너무나도 많이 파괴되었다. 대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것이 마땅하다 여기고 지식인으로서 작은 것을 희생시키는 악역을 맡아야 한다는 사명 의식을 가지기도 한다.(p.107) 그리하여 악역을 맡아 동물을 희생시키고 백인이 아닌 흑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까지 불사한다. 윤리의 뜻을 다시 한번 읽어본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 과연 동물실험이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동물실험이 인간의 의학을 발전시켰다고 해서 그 모든 실험이 옳다고 할 수 있을까. 결국 동물실험으로 인해 인간에게까지 부작용이 나타났을 때에야 그 오류를 깨닫게 되었다.


고개를 들어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것. 그게 바로 문학의 힘이 아닐까(p.112)라는 말에 동의한다. '어느 개 이야기'는 실제 모티브가 된 과학자와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가 있다. 뒤에 덧붙이는 동물실험과 인간실험에 대한 글은 인간에 대한 혐오마저 들게 한다. "이미 가난해서 치료도 못 받고 죽을 사람들인데 그냥 죽을 바에는 의학 발전에 이바지하는 게 낫지 않은가?"라는 과학자의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마크 트웨인이 동물시험에 반대하며 쓴 편지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살아있는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생체실험이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지에 아무런 관심이 없소. 인류에게 커다란 유익을 가져온다 할지라도, 내가 느끼는 이 혐오감은 절대 줄어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오."


지난날 생체실험이라는 비윤리적인 행위를 통해 인간의 문명이 발전해 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일들이 옳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의 고통만이 고통이 아니고 동물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동물실험으로 인간에게 필요한 어떤 유익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가난하고 병들었다고 해서 실험당해도 되는 인간은 없다. 그깟 동물들의 죽음이 뭐가 그렇게 심각한 일이냐고 반문하는 인간은 되고 싶지 않다. 인간을 위해 동물의 희생쯤은 불가피한 것 아니냐며 그로 인해 얼마나 발전했느냐, 너도 그 혜택을 누리고 있지 않느냐는 말을 하는 인간은 되고 싶지 않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마땅히 지켜할 도리를 지킬 때 인간일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생각하는 윤리란 모든 가치는 생명의 존엄을 바탕으로 해야 하고 다수를 위해 소수의 의견이나 희생을 당연시해서는 안 되며 정의와 옳고 그름보다 효율과 발전을 우선시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너무 어려운 주제였다. 정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마무리가 어설프다. 머리를 싸매도 더 나은 마무리는 나오지 않을 것 같아 이렇게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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