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 나만의 세상
단조롭고 지루한, 그러나 안전한
녹신녹신
맥이 빠져 몹시 나른한 모양.
글을 써야지, 하루종일 생각했는데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장마가 와서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주말이었다. 공기는 습하고 무거웠다. 주말에 늘어져 있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다고 매우 우울한 상태도 아니다. 나른하고 잔잔한 상태. 기운이 넘치지도 한없이 가라앉지도 않은 그런 무른 상태. 언젠가 달뜬 상태가 지속된 적이 있었다. 달뜬 마음은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고 마음이 침잠이 가라앉기까지 오래 걸렸다.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다. 궁금한 것도 없고 설레는 일도 없으며 그저 보통의 단조로운 하루를 살아간다. 특별한 이벤트가 일어나지 않는 하루를 보내며 글을 쓴다는 것이 참 어렵다.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이 시간이 조금 지루하고 심심하다. 늙어가는 것을 체감하는 것은 이런 순간이다. 심심하지만 심심하지 않다. 별일 없이 살아가는 일상이 자연스럽다. 얼마 전에는 대형화재가 일어났고 며칠 전에는 대형교통사고가 있었다. 7월은 승진의 달이라 승진과 인사이동으로 바쁜 월초였다. 내 주변만 고요히 멈춰있는 것 같다. 내가 만들어낸 둥근 막 속에서 나는 안전하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고 아무도 없어도 괜찮다. 온전한 나만의 세상. 녹신녹신 누워서 글을 쓴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