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충동구매의 여왕
사고 싶은 것은 끝이 없고
충동구매
물건 따위를 살 필요나 의사가 없이, 물건 따위를 구경하거나 광고를 보다가 갑자기 사고 싶어져 사는 행위.
오랜만에 퇴근 후에 마트에 갔다. 집에서 음식을 하는 것을 좋아했었다. 동생과 함께 살 때는 요리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만들었다. 보쌈, 김밥, 구절판, 닭볶음탕, 단호박해물찜 등등 이십 대에는 요리가 즐거웠고 누군가에게 밥을 해주는 행위에서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는 요리 자체가 귀찮다. 그래서 장보는 일도 줄었다. 오늘은 텅 빈 냉장고를 채워야겠다 생각하며 마트를 돌았다. 과일은 비쌌고 식재료 역시 비쌌다. 한 끼를 해결하자고 이것저것 사다 보니 바구니는 점점 무거워졌다. 장보기리스트는 따로 없었고 충동적으로 물건을 집어 들었다.
나는 쓸데없는 것을 사는 것을 좋아한다. 효율적인 소비를 잘 못하는 것 같다.(이제 와서?) 물론 필요한 것들을 사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 필요해서 사는 것보다는 예쁘고 귀여운 것을 사는 것이 더 신난다. 최근에는 다꾸에 관심이 생겨서 스티커와 마스킹테이프를 신나게 사들였다. 독서와 필사가 취미다 보니 문구류에 대한 욕심이 많다. 저렴한 만년필들을 사들이고 만년필에 잉킹할 잉크들을 사들이고 만년필을 쓸 노트를 사들인다. 친구들에게서 소분받은 잉크가 쌓여있는데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잉크들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고르는 일은 너무 괴롭다. 전부 살 수도 없지만 그만 사도 되는데 또 사고 있다. 새로운 잉크를 쓸 때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그러니 또 사들이고 있겠지. 취미와 관련된 물품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고 충동구매한 다 쓰지도 못할 문구류가 집안 여기저기에 쌓여있다. 고가의 물품을 사들이지 않는 것에 위안을 삼기에는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내 집은 잡동사니천국이 되었다.
사재기하듯 물건을 사들이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다가도 이건 다 필요한 것들이야, 라며 자기합리화를 한다. 사실 내가 물건을 사들이는 것은 채워지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옷이나 신발, 화장품 같은 나를 꾸미는 것부터 책과 문구류 같은 취미생활을 위한 것과 간식, 생필품, 식재료와 같은 생활에 필요한 것까지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이 채워진다고 해서 나의 마음이 풍족해지는 것은 아니다. 나의 마음은 결핍으로 가득차 있다. 사람에게서 애정과 관심을 원하면서 사람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기 하기 때문이다. 애정의 결핍에서 오는 허한 마음을 물건으로 채우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애정을 갈구하는 마음과 애정을 회피하는 마음 사이에서 늘 휘청댄다. 하지만 회피하는 마음은 더 힘이 세고 나는 물건을 산다. 마음을 돌려받기 위해 애쓰고 싶지 않으므로.
쓸데없는 것이 나에게 쓸데 있는 것이다. 그것이 잘못된 방식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마음이 기대기보다 사람에게서 벗어나는 것을 택한다. 외롭거나 고독하거나 쓸쓸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내가 택한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