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서 열리는 독립출판 북페어 '책쾌'에 다녀왔다. 작년에는 연화정도서관에서 했는데 올해는 남부시장 내에 있는 문화공판장 작당에서 열렸다. 책쾌는 독립출판 북페어라서 평소에 쉽게 만날 수 없는 다양하고 개성 있는 출판사들을 만날 수 있다. '책쾌'라는 말이 생소한데 '걸어 다니는 서점'이라 불리며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책을 팔던 조선시대 서적 중개상 '책쾌'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책을 팔러 돌아다니는 보부상들이 있었다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무척이나 흥미롭고 반갑다.
작년에도 다녀오고 좋았기 때문에 올해도 가기로 하고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작년에 함께 갔던 친구들과 올해 처음 같이 가게 된 친구까지 넷이 모였다. 11시쯤 만나기로 하고 남부시장으로 향했다. 남부시장 안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장마 아닌 장마로 습하면서 무더운 날씨에 도착하기도 전에 조금 지쳤다. 작당에 가까워지자 하늘에서 책쾌의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의 멘트가 들려왔다. 서둘러 올라가 보니 11시가 조금 넘었다. 한 명이 조금 늦는다고 했는데 주차 때문에 더 늦어져서 우리는 먼저 들어갔다.
작년에 비해 공간이 좁아진 것 같았는데 셀러는 작년보다 24팀이 늘어 89팀이 참가했다니 독립출판계도 규모가 작지 않았구나. 서울국제도서전에 비하면 사람이 많은 축에 끼지도 못할 텐데 셀러만으로도 사람이 가득하고 관람객 역시 많았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 가려다 수많은 사람들을 견딜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안 가길 잘했다. 어마어마한 사람들에 대한 소식은 정말 무서웠다.) 책쾌는 지방에서 열리는 만큼 사람이 그보단 적겠지 했는데 지방에도 책열풍이 만만치 않았다. 독서인구는 줄어들고 있다지만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책행사에 빠질 수 없고 독서인간들이 몰려들었으니 당연히 사람이 많은 게 당연했다.
90팀 가까이 한 공간에 있다 보니 편하게 구경하기가 조금 힘들었다. 친구들과 머물며 대화를 나누거나 책과 소품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겨를이 없었다. 어느새 친구들이 사라졌다. 사람들 사이에 끼여 밀리듯이 구경을 했다. 친구들도 밀려가듯 구경하고 있겠지 생각하고 보물찾기 하는 기분으로 둘러보았다. 작년에도 만났던 곳을 다시 만나서 반가웠고 새로운 곳은 새로워서 반가웠다. 하지만 사람들이 스칠 때마다 움츠러들었고 실내는 시원했지만 사람들이 많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서 체온으로 열기가 느껴졌다. 사람들의 목소리와 스치는 피부, 다양한 채취까지 조금 어지러웠다. 어느새 찾아온 친구를 만났다. 뒤늦게 도착한 친구와 함께 둘러보다가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인스타로 봤던 출판사를 찾아서 책을 사고 사인을 받고 새롭게 발견한 출판사의 책도 샀다. 친구들과는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면서 각자 취향의 책들을 구경하며 사들였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의 엽서와 노트를 사고, 제주의 바다에서 주운 유리조각으로 만든 자석도 샀다.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 사진도 찍고 아까 지나쳤는데 다시 가보니 좋았던 책이 보여 사기도 했다. 1시간 정도 돌아보는 사이 답답하고 눈이 시려서 두 번이나 밖에 나갔다 왔다. 더 둘러보고 더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어쩐지 금방 지쳐버려서 나왔는데 친구들도 이미 나와있었다.
친구들과 전주에서 유명한 피순대국밥을 먹고 워커비에서 열리는 하우스마켓을 보러 갔다. 하우스마켓은 북 앤 아트를 선보이는 16개의 브랜드와 함께하는 북마켓으로 플리마켓과 북페어가 섞인 행사였다. 책쾌에 비해 셀러가 많지 않고 사람들도 많지 않아 쾌적했다. 책뿐만 아니라 그릇과 문구, 소품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다. 구매를 하면 경품쿠폰을 주는 친구가 일등에 당첨에 되어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15만원 이상의 꿀패키지였는데 꽝이나 5등이 나오는 와중에 일등이 나와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졌다. 금손친구는 경품마저 금손인가 보다.
기쁜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고 놀다가 3시에 예약해 둔 '살림책방라운지'로 향했다. 일등상품 때문에 짐이 무거워서 차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는데 나는 건너편에 있는 FNB풍년제과에 들리기 위해 혼자 걸어가기로 했다. 초코파이를 사고 천천히 걸어서 가는데 날씨가 더운데도 평온했다. 방금 책을 잔뜩 사놓고 또다시 책방으로 가다니 웃음이 났다. 도착하니 친구들도 딱 맞춰 도착했다. 살림책방라운지는 한옥마을 내에 있는 살림책방에 새로운 오픈한 예약제서점이다. 1인석과 다다미방으로 이루어진 라운지는 예약제로 공간대여의 형태라서 예약한 사람들만 들어오고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한정적이라 꼭 오고 싶었던 곳이었다. 오픈한 지 이제 이틀째인 라운지에는 3시 타임에 우리밖에 없었다. 사람들 틈에 있다가 한적한 공간으로 들어오니 너무 평화로웠다. 조금 더웠지만 다다미방에 가만히 앉아 책도 보고 수다도 떨고 사진도 찍으며 2시간을 보냈다. 친구들과 같이 차를 타고 주차장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걷고 싶어서 살림책방라운지 앞에서 헤어졌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서점 카프카가 있었다. 지난번에도 그냥 지나쳤으니 이번에는 들려야지. 2층으로 올라가니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과 타자기, 격자무늬 창과 담쟁이덩굴까지, 오래된 공간이라서 아름다운 그런 책방이었다. 책방으로 올라가는 계단부터 이 책방이 마음에 들었다. 책방이자 카페인 곳이라 책도 보고 필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분명 마음에 들고 좋은 느낌이었는데 사람들 사이에서 책을 좀 구경하면서도 자꾸만 나가고 싶어졌다. 카프카노트 한 권을 사고 사진을 몇 장 찍고 나서 서둘러 나왔다. 덥고 습한 바람이 불었다.
카프카에서 나오고 나서 확실하게 깨달았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게 힘들다. 사람들이 있는 공간이 못 견디게 힘들 정도는 아니지만 사람들 사이에 있고 싶지 않다. 사람들 사이에서 울렁거리던 마음이 낯설다. 자꾸만 사라지고 불쑥 느껴지는 무거운 기운은 친구들에게도 느껴졌을 것이다. 친구들은 좋은 사람들이니까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겠지만 민폐를 끼쳤을 것이다. 전혀 모르고 지나쳤을 수도 있다. 나의 이런 마음들이 사람들에게 벗어나고 싶게 만든다. 그럼에도 하루 자체는 즐겁게 행복했다. 그것만 기억하면 좋겠다. 그 마음만 남아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