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좋아한다. 혼자서 사뿐사뿐 걷는 시간.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바닷가에서도 숲 속에서도 걷는 시간이 좋다. 이왕이면 고요한 장소가 더 좋기 때문에 숲이나 공원을 더 좋아한다.
어제 전주에 다녀와서 피곤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책쾌에 다녀온 후기를 쓰고 나서 사람들 사이에서 무척 피곤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왜 기절하듯 잠을 자지 못할까. 오랜 고질병인 불면증은 나이가 들기도 했고 체력이 바닥나서 일찍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봐야 1시에서 2시쯤 자는 편이다. 어제는 에너지가 방전됐음에도 불구하고 4시쯤 잠들고 말았다. 주말에는 출근의 압박이 없어서인지 더 늦게 잠드는 것 같다. 9시쯤 일어나 보니 여전히 깜깜하다. 빗소리가 꽤 크게 들린다. 베란다에 나가보니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집에서 무조건 쉬어야지 다짐했는데 집에선 도통 책을 읽을 수가 없다. 책도 읽어야 하고 필사도 해야 하고 서평단으로 받은 책 사진도 찍어야 했다. 집안은 여전히 엉망이라서 대충 씻고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갔다.
비가 꽤 많이 내린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버드나무숲이 아름다운 카페에 가기로 했다. 출발할 땐 비가 쏟아지더니 금세 빗줄기가 약해졌다. 카페 근처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가 꽤 많다. 카페가 큰 편은 아니기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지나쳤다. 어제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지쳐버렸기 때문에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카페 주변 풍경과 카페 분위기와 커피가 맛있어서 딱 좋은 곳이었는데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근처에 있는 대형카페는 (소문으로는) 인기가 없어서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테이블이 높은 것이 장점이라 더 멀리 가지 않고 그곳으로 갔다. 들어가 보니 예상대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자리를 잡고 편안하게 책을 읽고 필사를 했다. 창밖을 보니 수국밭이 보였다. 전에 수국을 심을 거라는 계획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어느새 수국이 많이 자라 있었다. 나가기 전에 들려야지. 이어폰을 챙겨 오지 못해서 조금 걱정이 됐지만 일단 할 일을 한다. 층고가 높고 공간이 넓어서인지 사람들이 와도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1시간 30분 정도 지났을까. 동네 어르신들이 들이닥치고 욕설 섞인 큰소리의 수다가 이어져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수국을 보러 가야겠다.
차에 짐을 넣어두고 수국밭으로 갔다. 밤새 비가 내려서 수국들이 많이 주저앉았다. 내가 생각했던 수국은 키가 작은 느낌이었는데 키가 큰 수국이 많았다. 꽃대가 얇아서 꽃송이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좀 더 관리하면 좋을 텐데 아쉽다. 하지만 그래서 사람들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아주 넓지는 않았지만 천천히 수국을 둘러보았다. 비에 젖은 수국을 보며 걷는 고요한 시간이 좋았다. 짧은 산책을 끝내고 모기 물린 다리를 벅벅 긁으며 차로 돌아갔다. 고요한 산책이었으나 모기와의 전쟁이었나 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주변이 숲과 천변이라 드라이브하기에 좋다. 시원한 차 안에서 비를 머금은 숲을 바라보며 달리는 시간도 산책 못지않게 좋았다. 차분하고 고요한 일요일 오후가 그렇게 흘러갔다. 고요한 풍경처럼 마음도 고요하면 좋으련만 마음은 어쩌자고 이리도 어지러운지.